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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평가제도(고교교육을 살리자: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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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평가제도(고교교육을 살리자:18)

입력
1993.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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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전인교육… 진학결정 「잣대」로/사고능력보다 암기력 측정에 중점/마치 입시위한 실전연습으로 전락학교교육에서 평가의 목적은 단순히 학업성취도를 측정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평가는 이같은 교육의 성취도 측정뿐 아니라 교육목표를 수정·개선하는 자료로서의 기능도 갖고 있다. 다시말해 평가는 실시된 교육내용에 대한 종결이 아니라,계속되는 교육의 각 단계에서 늘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것이 교육학적 이상이다.

그러나 수십년간 궁극적으로 대입시 관문통과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고교교육 풍토속에서 교육평가,특히 학교시험의 성격은 근본부터 뒤바뀌었다. 극히 최근까지만 해도 고교교육 현장에서 일상화되다시피한 각종 공식·비공식적 시험은 단순한 평가의 의미조차도 확보하지 못한채 대입시를 위한 「실전연습」으로 전락했다. 평가의 교육적 의미는 철저히 무시된 채 답안을 효과적으로 작성하는 방법,대입시에서의 고사시간 감각을 익히는 훈련과정 정도로 인식됐다.

교육부는 전인교육을 목표로한 교육구조 개편작업의 일환으로 대입시제도를 바꾸면서 올해부터 저학년은 연 4회,3학년은 연 6회로 평가의 횟수까지 제한했다. 우선 무제한적으로 늘어난 시험횟수를 줄임으로써 학교시험의 교육평가적 의미를 되살리고 시험으로 인한 학생들의 압박감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아울러 시험부담을 덜어줌으로써 학생들에게 여유를 줘 교육의 정상화를 꾀하겠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

그러나 제도만 바꿨을 뿐 시험의 관행은 여전하다. 일선고교에서는 교육부의 시험횟수 제한을 어기고 「실전연습」 성격의 시험이 변형된 형식으로 치러지고 있다. 시험횟수는 상대적으로 줄었지만 올바른 평가관리체계 등 평가체제는 전혀 모색되지 않고 있다. 총점만을 따지는 종합성적평가관행 역시 개선될 기미가 없어 개성평가와 이를 통한 분야별능력발견 및 신장은 구두선이 되고 있다.

서울 J여고 3학년학생들은 1년에 기본적으로 14회의 시험을 치르고 있다. 교육부 지침에 따라 연 6회 실시하는 정규시험외에 4회의 실력고사와 외부출제 문제로 치러지는 4회의 모의고사가 추가된다. 국·영·수 등 주요 과목에 대한 「실전고사」를 제외하고도 월 1회 이상의 시험을 치르는 셈이다.

이 학교 3학년 교무주임을 말고 있는 김모씨(51)는 『현재의 여건상 전인교육이라는 교육목표는 이상론에 불과하다. 대입시제도는 바뀌었지만 학교시험이 대입시를 위한 훈련과정이라는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92년초에 중앙교육평가원이 발표한 「각급학교 교육평가실태조사 분석연구」라는 보고서에 의하면 고교교사 가운데 60.5%와 학생의 55%가 평가의 주된 목적을 학업성취도 확인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평가가 학습지도 방향 모색을 위한 유용한 자료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교사의 31.9%,학생의 13%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결과는 교사나 학생 모두가 평가자체를 학업성취도의 확인이라는 단편적인 수준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왜곡된 평가관은 학교시험 시행단계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점을 야기한다.

우선 학교시험을 출제하고 관리할 평가기구 조차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못하다. 서울 Y고 국어교사인 정모씨(36)는 『기말고사 등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시험조차 제대로 출제가 안되고 있다. 담당과목 교사들에 의한 공동출제는 시험문제의 합리적 개발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시험결과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이의제기를 무마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비한 문제개발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으며 시중에 나도는 대입시용 참고서 문제를 변형해 출제하기도 바쁜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교육부 예규 제1백44호에 규정된 「고등학교 학업성적 관리지침」의 성적관리위원회 운영에 따른 행정지도 결과 전국고교의 92.8%가 형식적으로 나마 교내에 교육평가기구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각급학교 교육평가실태조사 분석연구」). 그러나 교육평가기구의 설치목적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성적관리의 공정성을 위한 기구라고 대답한 교사가 전체 응답교사의 83.9%를 차지한 반면,6.3%만 학습 및 평가방법의 개선을 위한 것으로 대답했다.

평가에 대한 근본적 인식부족과 출제관리의 부재는 현행 학교시험에서 갖가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한 문제점으로 꼽히는 것이 외부문제에 의한 평가방법이다.

현재 각 고등학교에서 공식 비공식적으로 연 10회 정도 실시하는 각종 학교시험의 대부분은 외부출제 문제이며,채점 또한 문제출제회사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이같은 사정은 기말고사 등 내신에 직접 반영되는 시험의 경우도 비슷한 실정이다. 출제 및 채점을 외부에 의뢰해 실시하는 평가는 학생 개개인에 대한 정확한 학습능력 진단과 이해를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수업방법의 개선에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교육학적으로 볼때 상대적 평가방식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교과별 단원별 교육목표의 달성여부를 평가할 수 있는 구체적인 필수문항이 개발되지 못하는 형편에서 시험은 학생들의 성취도를 자리매김하는 기능밖에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따라 학생 간의 경쟁의 격화,계층의식의 합리화,부정적 자아개념의 형성이 학교시험으로 파생되고 있다.

학생의 학습능력은 모든 과목에 고르게 나타날 수는 없다. 개성에 따라 특정과목에 대한 학습능력은 뛰어나지만 다른 과목에 대한 학습능력은 떨어질 수 있다. 바람직한 교육평가는 불균등한 학생 개개인의 수학능력을 전제,개성을 신장시키는 방향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평가는 철저하게 종합성적·종합득점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효과적인 문제유형 개발이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평가가 단편적 지식측정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대부분의 고등학교가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비한 학습모델 조차 개발하고 있지 못한 형편에서 창의력이나 추리력·분석력 등 고차적인 잠재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문항개발은 사실상 불가능한 형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출제의 적당주의와 암기위주의 학습태도는 악순환을 이루며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새 대입시제도는 학교 내신성적의 반영률을 40%로 대폭 상향조정했다. 이같은 변화는 단 한차례 치러지는 대학입학시험의 비중을 낮춤으로써 학교현장교육을 정상화시키려는 취지에 따른 것이다. 이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도 학교시험이 지식평가보다는 정상적 학교교육의 효과를 전반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변화돼야만 한다는 것이 교육계 일반의 시각이다. 『글 잘쓰는 학생의 특기는 국어성적에,노래 잘하는 학생의 특기는 음악성적에 반영될 수 있는 평가체제가 개발돼야 한다』는 서울 S여고 장모교사(48)의 시각은 교육정상화를 위한 평가제도의 개선방향을 단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올해초 서울특별시 교육연구원도 「교육평가개선방향」(92년 12월작성)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평가기구의 조직,전인평가를 위한 평가영역개발 등 7개항의 당면 실천과제를 발표했었다. 그러나 일선교사들은 한결같이 이에 앞서 중등교육 과정과 체계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김현수·장인철·여동은·남경욱·이진동·현상엽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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