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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항쟁 지휘본부는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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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항쟁 지휘본부는 “식당”

입력
1993.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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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제동 「안집」… 아직 그자리에 그대로/당국 감시피해 보름간 이용/민주헌법 쟁취 방안등 토론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 건너편 골목길로 들어가 오른쪽 일방통행로에 들어서면 길 왼쪽한켠에 자그마한 한옥이 눈에뛴다. 종로구 효제동 136 대중한정식집 「안집」.

얼핏 부근의 그만그만한 한정식집 가운데 하나로 보일 뿐이지만,알고보면 결코 「그만그만한 밥집」이 아니다.

국민들의 민주화열망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던 87년 6·10항쟁기간에 민주항쟁을 이끌었던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지도자들이 주린 배를 채우면서 앞으로의 대응방안 등을 놓고 머리를 맞댄곳이 바로 「안집」이었다. 기도교회관 3층에 「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차려놓고 있었던 「6·10항쟁」 지도부는 못다한 대책논의를 「안집」에서 하곤했다.

국민운동본부의 대변인 인명진목사,집행위원장 오충일목사,민통련 대변인 박계동씨(현 민주당의원) 등이 보름남짓한 기간에 「안집」에서 우거지국,추어탕 등을 먹으면서 급박하게 돌아가던 상황을 가다듬었던 것이다.

84년봄에 문을 연 「안집」주인 김영근씨(47·여)는 『저녁마다 심각한 얘기를 나누던 그분들이 민주화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아니마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황해도 해주출신의 월남민인 김씨는 독실한 기독교신자여서 일요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았으나 이 기간에는 일요일에도 문을 열었다. 손님들의 논의가 길어져 밤 12시를 넘긴 뒤에도 문을 닫을수가 없었다.

『그때 경찰은 전혀 눈치채질 못했다』고 말한 김씨는 『속으로는 몹시 불안했지만 나라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회고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우리사회는 문민정부 출범이 상징하듯 많이도 바뀌었지만 「안집」은 6년전 모습 그대로다. 달라진 것을 찾느다면 김씨의 주름살이 조금 늘어난 것과 2천5백원이던 밥값이 4천원이 된 것 뿐이다.

김씨는 『그때의 민주화항쟁이 지금의 우리사회를 만들지 않았느냐』고 말하고 있다.<최성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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