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땅만 믿다 땅에 짓눌려 몰락/구속방침 배종렬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땅만 믿다 땅에 짓눌려 몰락/구속방침 배종렬씨

입력
1993.06.10 00:00
0 0

◎수천억 체임하며 회사돈 이용 사익 챙겨/검찰 「기업 망해도 사주 사는 풍토」 철퇴▷한양의 붕괴◁

9일 배종렬 전 한양그룹 회장의 구속방침 소식을 접한 모기업 임원은 『땅을 그렇게 사들이더니 결국은…』하며 혀를 끌끌 찼다. 땅탐욕이 끝내 회사를 망치고 쇠고랑까지 자초했다고 풀이한 이 임원은 한때 배 전 회장의 측근 참모역할을 했던 한양출신. 회장의 땅 사재기에 섣불리 제동을 걸다가 그의 눈밖에 나 한양을 떠나야 했던 사람이다.

한양의 붕괴,정확히는 배 전 회장이 몰락한데는 무리하고 독선적인 경영관리,아파트 부실시공으로 인한 사회적 물의,노사분규,정권교체로 인한 정치적 백그라운드의 상실 등 여러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부동산 과욕이 최대의 화근이었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양은 2조8천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중 상가(또는 부지)와 택지만 하더라도 1조9천억원에 달해 1조2천억원의 금융빚더미를 충분히 갚고 남는 규모이다. 그는 금융빚과 체불임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도 부동산만은 꼭 끼어 안고 있었다. 땅에 대한 그의 집착은 재계에서도 유명하게 알려져 있다.

80년대말 수도권 신도시 건설계획 때도 건설업체중 가장 많은 35만평의 택지를 매입했고 아파트단지내 상가도 다른 업체들이 대개 일반 분양하는데 반해 배 회장은 분양을 않고 임대로 움켜 쥐었다. 86년 산업합리화 업체로 지정된후 구제자금으로 받은 은행돈까지도 땅에 쏟아 부었다.

이처럼 마구 사들인 땅을 통해 사업을 확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땅을 팔아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산업합리화 대상업체로 지정됐을 때도 마지 못했지만 땅을 매각함으로써 고비를 넘겼다. 원래 소유하고 있던 잠실 롯데월드 부지를 판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수가 먹혀들지 않아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지게 된 것이다.

지난달 사태가 다급해지자 배 전 회장은 부동산 몇건만 처분하면 단번에 해결될 것이라고 주거래은행측에 상담하며 수도권 신도시의 상가용지 부산 한양플라자백화점 등 2천억원에 상당하는 부동산을 매물로 내놓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부동산은 단 1건도 팔리지 않았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사겠다는 임자가 한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

배 전 회장은 뛰어난 로비력을 가진 재계의 마당발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동안 정·관계에서 힘깨나 쓴다는 인물치고 그로부터 한번쯤 도움을 받지 않았던 사람이 드물다고 할 정도로 「물량공세」에 능했다는 것이다. 91년 해외건설업체 면허발급 때 산업합리화 지정업체여서 면허발급을 못받게 되자 정·관계의 실력자들이 발벗고 나서 면허를 받도록 지원을 했던 사실은 그의 로비력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례였다. 배 전 회장은 이같은 로비력을 바탕으로 지난 20년간 여러번의 위기를 돌파하고 회사도 근근이 지탱해왔으나 부동산 과다보유로 인한 누적된 부담으로 이번에 끝내 무릎을 꿇고 말았다.

땅 탐욕에서 배태된 부동산암이 갖가지 경영부실 요인들과 합병증을 일으켜 회사와 사주에게 치명타를 줬다는게 배 전 회장의 구속사태를 보는 재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올해가 설립 20주년인 한양의 몰락은 부동산 거품에 의지해 성장했던 기업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송태권기자>

▷수사방향◁

검찰이 9일 (주)한양의 배종렬회장(53)을 구속키로 방침을 정하고 전격 지명수배한 것은 수많은 근로자들의 임근은 체불한채 회사 자산을 빼돌려온 악덕기업주에게 철퇴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 부실공사와 이로인한 잦은 산업재해 유발의 책임을 공사현장 책임자 등 실무자급을 넘어 기업주에게 직접 묻는다는 의미도 있다.

이는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기업풍토를 바로 잡고 기업주의 사회적 책임을 엄격히 따져 건전한 경영풍토 및 노사관계의 정립을 유도하겠다는 새정부의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배 회장은 이미 지난 4월께부터 검찰의 내사를 받아왔다. 이에 앞서 (주)한양 노조측이 서울지방 노동청에 체불임금 지급과 경영정상화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내 형식상 법인 대표인 강법명사장(58·예비역 소장)이 근로기준법 위반혐의로 입건돼 조사를 받았다. 이어 검찰은 강 사장을 송치받아 지난 4월27일 소환조사까지 마치고 불구속입건해 놓은 상태다.

배 회장의 혐의는 ▲임금 등 2천38억원을 체불하고 이중 3백58억원을 청산하지 않았고 ▲사망 15명 등 1백73명의 산업재해 사상자를 발생케 했으며 ▲이 와중에서도 회사자금을 빼돌려 부동산과 주식 등 1백66억여원의 개인자금을 취득한 점 등 크게 세가지이다.

검찰은 근로자들의 임금을 체불한채 회사자금을 빼돌려 개인자산을 취득한 것을 공분을 불러일으킬만한 파렴치한 행위로 간주,일찌감치 구속방침을 정하고 지난 4월말 배 회장을 출국금지조치한뒤 신병확보에 주력해왔다.

이에 따라 앞으로 검찰 수사도 배 회장의 기업자산 유용여부에 집중될 전망이다.<홍윤오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