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부」 탈피 정치기풍 혁신/국회,윤리법등 제도확립 기수로/견제와 균형속 여야 동반자 진입/「모양」서 「실질」로 당정관계 활성/“민의수렴 모임” 지역구 새모습「위로부터의 개혁」이 시작된이후 정치권은 어떻게 변해가고 있을까. 정치권은 사회구조의 상층부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위로부터의 개혁」에서 우선적인 표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정치권은 1백일 넘게 계속되고 있는 개혁드라이브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고 개혁의 파고에 휩쓸려 사회 어느 분야보다도 더 혹독한 몸살을 앓고 있다.
정치자금 단절선언은 깨끗한 정치풍토 조성으로 이어지기 위해 부단한 시행착오를 겪고 있고 이 과정에서 의원들과 유권자들의 의식도 크게 바뀌고 있다.
대립과 격돌로 얼룩졌던 여·야관계는 생산적인 변모를 보이기 시작했고 형식적 조율에 그쳤던 당정관계도 실질적인 토의의 모습을 지향하고 있다. 이 와중에서 정치인들은 정치권의 모습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의 협조가 절대로 필요하다는 주문을 잊지 않고 있다.
한국일보는 창간 39주년 특집으로 새정부 출범이후 달라진 정치권의 모습을 조명해 보았다.
▷정계변화◁
개혁정국은 정치의 원형뿐만 아니라 내용까지 환골탈태시키고 있다.
정치권 변화의 첫 신호는 김영삼대통령의 재산공개와 정치자금 거부선언이었다.
『재임중 정치자금을 한푼도 안받겠다』는 김 대통령의 말은 정경유착,검은 돈의 정치권 유입에 대한 단절선언이었으며,깨끗한 정치의 「위로부터의 실천」이기도 했다.
김 대통령은 이후 청와대 수석이건,민자당이건 그 누구에게도 「하사금」을 주지 않았다. 6공시절 한달에 청와대가 민자당에 주는 돈이 10억∼20억원이었고,특별한 행사나 명절 때 의원들에게 지원해주는 돈이 3백만∼5백만원에 이르렀다. 그리고 선거때는 지원금이 수십배로 커진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월 1천만원의 당비를 민자당에 낼 뿐이었다.
자연 씀씀이가 줄었다. 월 15억∼20억원을 오르내리던 민자당 운영비가 4분의 1선으로 줄었으며 당직자들의 판공비도 50% 감축됐다.
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구당 운영비를 비롯,월 2천만원 이상 쓰던 지역구 의원들이 긴축살림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다 재산공개와 사정정국은 의원들의 정치생활 행태마저 바꿔버렸다. 재산공개 와중에서 투기의혹을 받은 몇몇 의원들이 의원직을 사퇴함에 따라 「권력=부」라는 등식이 깨지고 있다. 더욱이 사정한파속에서 검은 돈을 수수한 일부 의원들이 구속되자 의원들은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수준을 넘어 잔뜩 위축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재산공개 및 사정정국은 비단 여당에만 충격타를 던진게 아니었다. 야당도 개혁의 검증대에 올라야했고,개혁정치에서 뒷북치는 형국에 처하게 돼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됐다. 그 결과는 3개 보선에서의 여당 독식으로 나타났고,야당은 입지모색과 새로운 리더십 창출에 고심하게 됐다.
▷국회활동◁
새정부 출범으로 국회는 개혁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객체인 미묘한 입장에 놓여있다.
개혁주체로의 국회는 입법활동을 통해 개혁의 궁극적 목표인 법과 제도의 개혁을 완성해내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반면에 극한대립·비효율성·힘의 논리·밀실담합 의혹 등으로 상징되는 지난 시절의 국회상은 국회를 개혁대상으로 자리매김하는 주요 요인들이다.
국회가 개혁의 한 주체로서 제도개혁에 본격 착수하고,개혁의 객체로서 스스로에게 변혁의 「메스」를 대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 임시국회부터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국회는 새정부 출범후 처음 소집됐던 지난 임시국회에서 여야간 논란끝에 「정치관계법 심의특위」(위원장 신상식)를 구성,가동시킴으로써 제도개혁의 모태를 마련했다. 특위가 우선 심의대상으로 선정한 법률은 공직자윤리법·선거법·정당법·정치자금법·지방자치법·안기부법·보안법 등.
이들 법률들은 모두 정치제도 개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들로 여야 모두 개정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상태였다.
국회는 4월 임시국회 회기내에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킴으로써 법적·제도적 개혁의 첫 신호탄을 쏘았다. 특위는 현재 폐회기간임에도 불구,2개 심의반 활동을 계속하고 있어 7월 임시국회가 소집될 경우 일부 정치법률들이 더 개정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회의 제도개혁을 위한 입법노력은 각 상임위 차원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재무위의 재정관계법 심의,국방위의 군사관련 법률 개정노력,노동위의 노동관계법 개정문제,보사위의 각종 보사관련 비리척결 시도 등이 대표적 예이다.
국회 스스로 새로 태어나기 위한 각종 제도개선 및 내부법규 개정작업도 한창이다.
이는 국회운영위 산하의 「국회운영 및 제도개선소위」가 맡고 있다.
소위는 본회의 발언시간 조정 본회의 생중계 상임위제도 조정 등을 위한 국회법 국회 규칙 등의 개정을 추진중이다.
또 국회의원들의 「도덕 재무장」 차원에서 국회 윤리위원회 활동의 강화도 기대되고 있다. 정치풍토 개선을 위한 국회의원 윤리강령의 개정작업이 이미 시작됐다.
▷여야관계◁
새정부 출범이후 전통적인 여야간의 대립·갈등이 상당히 누그러졌다. 또한 여야간의 화해 또는 동반분위기도 분명하게 형성돼가고 있다.
여야 동반시대를 점치는 것은 아직은 빠른 것 같으나 모처럼 그런 가능성이 비쳐지고 있다.
여야관계의 은닉지대 진입은 무엇보다 권력핵심의 정통성 시비에서 파생된 이분법적 가치기준이 와해된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또 여야 지도부가 과거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쌓아온 동지적 연대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도 단순 대립구도를 허무는데 기여했다.
실제로 여당 핵심인사들과 야당 인사들은 여권내 구 세력이 눈살을 찌푸릴 만큼 공공연한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 한편으로 새정부가 북한 핵문제 등 국정의 주요현안을 야당에도 알리고 협의하는 태도를 보인 것도 야당의 소외의식을 씻는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안기부의 야당방문 브리핑 등은 상징적으로 국정에서의 야당의 역할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데 기여했다.
여야관계의 새로운 모습은 지난 4월의 임시국회 당시 여실히 나타났다. 여당의 정부편들기,야당의 정부 헐뜯기가 선명하게 대조되던 과거와 달리 여야 할 것 없이 잘못은 입을 모아 따지고 잘한 것은 같이 추켜주는 장면이 잇따랐다.
그러나 여야관계의 정상화 조짐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이해관계에 바탕한 여야간의 입지다툼은 여전하다. 최근들어 민주당은 새정부의 개혁을 비판적 관심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권력은 없어도 정당성을 먹고 살았던 과거와 달리 개혁국면을 맞아 야당이 독점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졌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당정관계◁
정부와 민자당은 최근들어 부쩍 활발하게 당정협의를 하고 있다. 새정부의 개혁의지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이다.
당주변에서는 이같은 일련의 당정협의가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평가한다. 과거 당정협의가 「모양갖추기」의 성격이 강했다면 새정부 출범이후의 당정협의는 실질적 논의의 측면이 강하다는 얘기이다. 이런 평가는 과거에 비해 정책결정 과정에서 당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당관계자들은 최근 당정협의의 특징을 「소규모」,「수시개최」 등으로 설명한다. 과거에는 대규모의 당정협의가 주류를 이루었고 자연히 실질논의보다는 행정부가 사전에 마련한 정책 또는 법안을 당이 추인하는 방식의 모양갖추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반해 지금은 고위 당정협의 등 대규모보다는 각 부처의 장·차관 또는 실무자가 참여하는 수준의 소규모 당정협의가 많이 열린다. 대신 당정협의의 횟수는 대폭 늘어났다. 정책 입안단계부터 당이 입장을 전달하고 당차원의 새로운 정책제안을 내놓기도 하는 「실질협의」라는 설명이다.
민자당은 또 민원실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국민의 소리」를 직접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시키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문민시대의 여당이란 더 이상 행정부의 「시녀」가 아니라 국민과 정부 사이의 통로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당관계자들의 얘기이다.
▷지역구 변모◁
지역구관리에서 우선 달라진 모습은 「정치 그 자체」를 위한 행사가 줄고 대신 일상생활과 관련된 모임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깨끗하고 돈 안드는 정치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의원들은 우선 돈을 가급적 쓰지 않으려하고 있다.
새정부 출범으로 정통성 시비가 사라지고 주요한 정치현안이 계속되는 선거에서 여과되었기 때문에 정치적 성격이 강한 집회개최의 필요성도 대폭 줄었다.
따라서 지구당 위원장들은 과거에 자주 가졌던 「지지대회」 「규탄대회」 대신에 등산대회 또는 자연보호·어린이교통사고예방 캠페인 등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모임을 통해 유권자에게 부드럽게 접근하고 있다.
또 과거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주민들로부터 민원을 취합,정책에 반영하거나 행정부와의 조정역할을 하려하고 있다.
앞으로는 단지 「선명성」이나 「명망성」에만 의존해서는 당선이 쉽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과 피부를 맞대고 호흡을 같이하려는 노력들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황영식·신효섭·김광덕기자>황영식·신효섭·김광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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