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들의 업종전문화 정책을 놓고 정부 부처 사이에 또한 정부와 여당 사이에 불협화음의 소리가 크다. 사안의 중요성에 비추어 관계기관이나 부처 사이에 이견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그 이견은 정부내에서 충분히 협조,조정을 거쳐 해소됐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부처가 발표하든 정부안으로 발표된 뒤에는 확고한 실행이 따라줘야 하는 것이다. 중요한 정책일수록 정책이 확고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김영삼대통령은 일관성,투명성을 정책의 요체로 강조해오고 있다. 업종전문화정책은 한국경제로서는 사활적이라할 정도로 중요한 정책이다.한국경제를 선도하고 있는 재벌그룹들의 그룹경영의 틀을 완전히 뒤바꾸는 것이다. 사실상 한국경제의 운영구도를 전환시키는 것이다. 업종전문화 정책은 파급영향이 엄청난 것인 만큼 정부정책은 재벌그룹이 믿고 따를 수 있을 만큼 합리적이고 확고해야 한다. 지금처럼 정책이 발표되자 관계부처 사이에 이견이 표출된다면 재벌그룹들이 어떻게 수용할 수 있겠는가. 현재의 견해 차이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경제기획원,재무부,상공자원부 등 관계부처들은 재벌그룹들의 업종전문화 유도 그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마찰이 없다. 그러나 방법에대해서는 이번의 주력업종안을 주도했던 상공부와 기획원 사이에는 깊은 골이 있다. 상공부의 『재벌그룹의 업종전문화 유도 계획안』을 간단히 말한다면 재벌그룹이 스스로 주력업종을 선정하고 이 업종 가운데서 주력기업을 선정하며 선정된 주력업종·주력기업에 대해서 여신관리대상에서의 제외,기술개발 지원,공장입지에의 배려 등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상공부는 주력업종의 선정을 재벌그룹 자체에 일임키로 했으나 혜택이 주어지는 주력업종을 공공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공개여부,소유분산정도,재무구조의 건실성 등을 감안해서 지정하겠다고 했다.
경제기획원측은 상공부안에 대해서 업종전문화에는 이론이 없으나 기준과 지침을 정부가 정하고 개입하는데는 문제가 있다』며 『상호지보규제 등 공정거래정책으로도 전문화가 가능하다』는 이유에서 강력히 반발을 제기하고 있다. 상공부는 경제기획원의 반대입장을 감안,『재벌그룹이 정부가 제시한 주력업체의 요건에 맞지 않는 기업을 주력기업으로 신고해 오더라도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후퇴를 했다. 정부는 11일 경제장관 회의를 갖고 이 문제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릴 계획이다. 이경식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은 『정부가 재벌들이 신청한 업종전문화 계획을 심사,허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즉 경제기획원과 상공부는 전문화업종의 선정은 전적으로 재벌그룹 자체에 일임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봤다고 하겠다. 그러나 주력업종과 주력기업을 몇개까지 허용할지에 대해서는 새로운 논의가 없다. 상공부측은 주력업종은 3개,각 주력업종에 대한 주력기업도 3개 즉 9개의 주력업종 주력기업을 허용하겠다고 밝힌바 있으나 경제기획원은 침묵,상공부 생각이 수용될지 두고봐야겠다.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상공부안은 정부의 관계위원회에서 합의된 것이다』며 『그러나 경제기획원에서 실무대표자와 고위정책 결정 사이에 충분한 협의가 없었던 것 같았다』고 했다. 어떻든 이러한 혼선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업종전문화 정책에서는 기왕에 관철하려고 한다면 상공부안이 적극적이고 현실적이다. 공정거래법상의 상호 출자제한과 상호 신용보증 한도 제한은 문어발식 확장을 차단할 수 있으나 업종전문화에는 미흡한 것이다. 경제기획원과 민자당은 기업의 자율을 강조하고 있으나 재벌그룹들이 스스로 전문업종을 조정해갈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고 믿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 11일 경제장관 회의에서는 업종전문화에 대한 명확한 정책이 나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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