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9일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씨를 북한으로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 했던 것은 다른 이산가족들이 언제쯤 북의 가족을 만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었다. 북한이 이산가족문제에 성의를 보일 때까지 이인모씨를 돌려보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정부가 「조건없는 인도주의 실천」을 내세우며 이인모씨 북송결정을 내리자 그 결정이 북의 태도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기대로 마음을 달랬다.그러나 북한은 예상대로 이인모씨를 선전물로 이용할뿐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성의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인모씨 북송이 결정되자마자 터져나온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선언은 남측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고,남북관계에서 이인모씨가 이산가족문제는 뒷전으로 급속하게 밀려났다.
지난 2일 발족한 「김국홍·함세환 북송 추진본부」는 또다른 비전향 장기수 두사람을 북으로 돌려보내자는 운동을 펴고 있다. 이 모임에는 기독교·불교·천주교의 인권위원회와 민가협 등 재야단체들이 참가하고 있는데,『이인모노인 북송의 전례를 잇는 사업으로 김국홍·함세환노인을 북에 송환하며 남북관계를 평화와 공존의 통일시대로 변화시켜 나가자』고 주장하면서 남북한 정부 당국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그들이 준비한 자료에 의하면 김국홍씨(68)는 평남 덕천군 덕천면 출신으로 6·25때 정치공작원으로 내려와 51년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체포된후 33년7개월을 복역했다. 그는 현재 광주 갱생보호소에 거처를 정하고 채석장 노동으로 어렵게 살고 있으며,평양에는 외국어대 교사와 유치원장인 두딸과 여동생이 살고 있다. 함세환씨(62)는 황해도 옹진태생으로 19살때 의용군으로 입대하여 빨치산으로 낙오되었다가 53년 속리산에 체포됐다. 그는 35년을 복역하였고,대전에서 노동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남한에서 살아온 43년은 분단의 비극 그 무게만큼이나 처절하다. 그들은 기나긴 옥고를 치르면서 끝까지 전향하지 않았고,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여생을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탄원하고 있다.
정부는 이미 이인모노인을 북송하면서 「조건없는 인도주의 실천」을 천명한바 있으므로 이 두노인의 북송역시 같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 이인모노인을 북송할 때 우리측에서는 오히려 북송을 원하는 모든 비전향 장기수들을 함께 보내겠다는 적극적인 제안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차피 조건없이 인도주의를 실천할 생각이라면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가족의 품에 돌려보내는 것이 좋다는 이유에서이다.
이인모노인의 송환을 요구했던 북한이 다른 비전향 장기수들을 받아들일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우리 정부는 이인모노인의 전례가 하나의 돌출사건이 아니라 일관된 원칙아래 지속되는 사건임을 재확인하고,이의 실천을 북에 촉구해야 한다. 북에 가서 가족과 살겠다는 사람들을 우리측에서는 보내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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