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정치문화가 다른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첫 1백일」의 업적에 대해 미국에서와 같은 무거운 비중을 둘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 오는 4일 취임 1백일을 맞는 김영삼대통령은 자신의 「신한국」 「신경제」 정책에 대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1백일을 가지고 성과를 따지는 것은 곤란하다』고 했다. 김 대통령보다 먼저 4월29일 백악관 입성 1백일을 맞았던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1백일동안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며 그러나 『이제 미국은 새로운 방향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한·미 두나라 대통령의 말마따나 첫 1백일은 임기 5년,4년에 비하면 전장 42.195㎞의 마라톤경기에서 첫 2㎞에나 상당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짧은 1백일이라도 대통령은 자신의 지도력,통치력을 국민들에게 맛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대통령은 다같은 새로운 변화 즉 『개혁』과 『혁신』을 갖고 선거에서 당선됐다. 그러나 유사성은 여기에서 끝난다. 클린턴 대통령은 당선직후 『레이저광선처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정책 초점이 불꽃놀이처럼 온 사방으로 흩어져 눈에 띄게 이루어놓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경기부양,정부지출 감축,증세,신산업 기술정책,해외시장 개방강화 등 미국의 경기회복과 경쟁력 제고를 겨냥한 클린터노믹스(클린턴 대통령의 경제정책)는 속셈이 다른 의회의 손질로 제모습을 잃었다. 이제는 클린터노믹스란 말조차 실종된 것 같다. 한편 행정부의 고위직 인선이 지나치게 느려 정책공백이 우려될 정도다. 정치적인 논공행상의 성격이 강한 해외주재 대사자리가 주한 대사를 포함하여 3분의 2나 공석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의 첫 1백일의 업적에 대한 여론조사(월스트리트 저널과 NBC 텔레비전의 공동조사)는 긍정 52%,부정 34%로 나타났다. 최근 역대 대통령의 평가중 최하위라는 것이다.김영삼대통령의 첫 1백일은 클린턴 미 대통령과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지난 2월25일 취임사에서 부정부패의 척결,경제회생,국가기강 확립 등을 국정 3대 목표로 선언했던 그는 목표추적이 「레이저광선」 같았다. 성역없는 사정은 청와대,감사원,안기부,검찰,경찰,국세청 등 정부내의 힘있는 부처는 물론 금융계,교육계 등 고질적인 비리를 안고 있는 부처를 정화의 수술대에 올려놓았다. 정부의 장·차관 등 고위직 공무원과 국회의원 등도 재산공개의 형식을 빌려 여론의 심사를 거쳤다. 3공부터 6공까지의 군출신 대통령 집권 30년 사이에 권력의 주도세력 내지는 지원세력이었던 군은 수뇌부의 전격 개편 등으로 환골탈태됐다. 「하나회」 「9·9회」 등 소위 「군중의 군」을 자처하며 육군의 지도부를 승계해온 소위 「정치군인」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어놓은 것이다. 실로 한세대만에 문민우위의 통치체제가 회복된 것이다.
김 대통령은 또한 경제회복에 대해서도 사정에 견줄만한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그는 사정과 경제회복을 동전의 앞뒷면이라 했다. 사정이 경기부양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일축하기 위해 한 말이지마는 경기회복에 역점의 차등을 둔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부는 「신경제 1백일 계획」 「신경제 5개년 계획」 등 장·단기 경제정책 계획을 마련,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신경제 1백일 계획」은 주로 현행의 불황에 대한 조기 타개책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설비투자의 부진 등으로 경기전환의 기미가 아직 뚜렷하지 않다. 김 대통령은 이에 대해 『다소 마음이 급해진다』고 했다. 「신경제 5개년 계획」은 금융산업의 개편,경제력 집중완화,업종전문화,불공정거래법 강화,실명제 등 우리 경제의 자율화,국제화,대형화에 대비한 정책 청사진이다. 실행계획이다.
김 대통령은 첫 1백일에 비전,추진력,강력한 지도력을 보여줬다. 여론조사에 나타난 지지도는 90%선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그의 「출발」은 『좋았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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