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과거사 정리해야/이성준(화요칼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과거사 정리해야/이성준(화요칼럼)

입력
1993.06.01 00:00
0 0

과거사에 대한 재평가작업이 간헐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12·12사태는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으로,5·16 광주민주화운동은 「민주화의 밑거름이 된 사건」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비록 이같은 재평가작업은 「완전 주체」가 될 수 없는 정부에 의해 이뤄졌지만,과거사에 대한 체계적 접근노력이 전무하다시피했던 우리의 현실에 비춰보면 그 의미는 각별하다.

4·19,5·16,6·29 등 광복후 현대사의 주요 고비고비가 그저 아라비아숫자의 행진으로 이어져 내려왔던게 우리의 현실이다.

새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이 정권이 과연 몇 공화국에 해당하는가 하는 법통성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이번의 경우도 새정권이 6공인가 7공인가 하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일각에서는 6·5공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또다른 시각은 32년만에 되찾은 문민정부인 만큼 곧바로 2공으로 평가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결국 이 문제는 새정부 스스로에 의해 「김영삼정부」로 정립됐다. 과거사에 대한 보다 분명한 정의가 돼있었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소모적인 얘기였음에 틀림없다.

과거사는 사실확인에 의한 엄격한 진상규명과 냉엄한 인식의 척도에 의해 평가될 때에만 비로소 역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광복이후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역사를 과연 가지고 있었는지를 스스로 반문해 볼때가 됐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고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고 했다. 따라서 과거사 재조명은 현재를 다지고 미래를 지향하는 값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모처럼만에 시도되는 이같은 노력이 가히 혁명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개혁작업의 와중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런만큼 다소의 한계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32년만에 들어선 문민정부의 정통성은 이같은 문제점을 상당부분 희석시켜주고 있다.

역사란 항상 새로운 사실이 나타나면 새롭게 씌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시도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감이 있다.

공보처가 우리나라 역대정권의 정통성과 역사성을 재평가·정리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라는 소식은 이러한 의미에서 반가운 일이다.

물론 재평가작업이 시대를 뛰어넘은 객관성을 어느정도 지닐 수 있느냐 하는 점은 당연히 지적되어야 한다. 그러나 재평가 작업을 진행하다보면 현대사의 사건들이 새로운 조명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는 곧바로 불감증에 걸려있는 우리의 역사의식을 촉발시켜 활발한 과거사 논쟁을 유도할 수도 있다. 공보처의 시도는 최소한 과거사의 완벽한 재정리로 가는 단초를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직도 우리는 33년전에 일어났던 「4·19」에 대해 명확한 성격규정을 못하고 있다. 32년전의 「5·16」도 마찬가지이다.

4·19가 혁명이냐,의거냐,아니면 미완의 혁명이냐­. 그리고 5·16은 군사혁명이냐,쿠데타냐 하는 문제는 60년대의 정치와 시대상을 어떻게 봐야하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돼 있다.

조금더 거슬러 올라가면 동학을 농민혁명으로 보느냐,농민전쟁으로 보느냐. 아니면 민란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는 구한말을 기술하는 역사의식의 중요한 부분을 이룰 수 밖에 없다.

8·15 광복을 별다른 준비없이 맞아 우여곡절끝에 건국을 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문제도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다.

과거의 권위주의 정권아래서는 과거사에 대한 재조명이 이를 원치 않는 권력의 힘에 의해 종종 중단되곤 했다. 5공 정권때 도하 신문들이 경쟁적으로 다루었던 제3공화국 시리즈가 외압에 의해 일제히 중단되었던게 좋은 예이다. 5공 출범과 직접 관련이 있는 12·12사태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단편적인 「진상마저도 언급될 수 없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공보처의 역대정권 재평가 작업에는 역사,정치학자와 중견언론인,그리고 역사비평가 등 사계의 권자가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상해 임시정부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는 쪽으로 방향정리가 돼가고 있는 것 같다.

재평가작업이 과연 공보처의 고유기능에 부합되느냐에 대해선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그리 개의할 문제는 아니다.

정부의 작업결과가 발표되면 문민시대의 트인 언로는 곳곳에서 반론권을 부추길 것이 분명하다. 반론의 문제제기 과정에서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있던 사실과 새로운 시각들이 발굴될 수 있으며,재평가작업은 보다 완벽성을 지향할 수 있다.

특히 정권에 대한 재평가작업은 보다 포괄적인 과거사 재평가 정리에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이제 역사를 가져야 한다. 경제적으로는 중진국을 넘어섰고 세계 12대 무역국이다. 우리가 우리 세대에 일어난 일을 초보단계나마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역사에 대한 문맹에서 깨어나 퇴화해버린 역사의식을 되찾은 것도 문민시대가 주는 축복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될때 우리 세대가 보다 미래지향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음은 물론이다.<편집국장대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