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뇌물사건들을 보면 몇억원쯤은 큰돈이 아니라는 착각마저 든다. 작은 가방 하나에 헌수표로 5억원이 담겨 가볍게 전달됐고,남의 이름을 빌린 차용증 써주기만으로 또다른 5억여원이 쉽사리 건네져 98평 호화빌라의 진짜주인이 될 수 있는 요지경 세상인 것이다. 또 뇌물 2억1천만원을 받은 어느 의원은 『그래도 나는 6공 실세중 가장 깨끗한 사람』이라고 말했다는게 아닌가. ◆그런 큰돈들을 푼돈인 양 건네받고도 처음부터 시인한 사람들이 없는 것도 거액 뇌물수수자들의 또다른 특징이다. 오히려 『눈보라치는 겨울 들판속의 나무』로,『권력이양기의 피할 수 없는 희생자』로,『맹세코 만난 적도,돈받은 적도 없다』고 스스로를 시대적 희생자쯤으로 미화하거나 마지막 순간까지 「오리발」을 내밀려 했던 것이다. ◆이런 참에 부산에 일어난 어느 은행지점장의 자살은 뜻밖의 사건이다. 은행감독원의 특별검사를 받았던 이 지점장은 다섯차례에 걸쳐 모두 8백20만원의 커미션을 받은 내력을 꼼꼼히 밝히고 『관행을 따르지 않으면 지점장 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평소의 고민을 적은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 적은 액수의 관행적 커미션을 받은 가책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의 「못남」이 어쩐지 앞의 「잘남」들과 퍽 대조적이다. ◆그런가하면 하찮은 절도범도 『훔친 물건을 돌려주겠다』며 뜻밖의 양심을 발휘한 일이 있다. 이 도둑은 가난한 야당 의원의 전세집에 들어가 도금한 국회의원 배지 2개,돌반지,작은 금열쇠 등을 훔친끝에 털 것이 없는 한심한 살림살이에 『재수없다』고 침마저 뱉었던 장본인이다. 이 사실이 보도되면서 피해자가 가난한 의원임을 알자 그 도둑은 전화로 『죄송합니다. 훔친물건 돌려 드리겠습니다』고 전해왔다는 것이다. ◆『사람나고 돈난다』고 했다. 돈보다는 사람값이 앞선다는 뜻이겠다. 「양상군자」마저도 그 뜻을 모르지 않았던 것이다. 높은 자리의 가진 자들도 제발 이 말을 명심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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