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석탄일 자비실천 역설 통도사 월하스님(초대석)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석탄일 자비실천 역설 통도사 월하스님(초대석)

입력
1993.05.28 00:00
0 0

◎“지도층 일수록 자기 낮춰야”/이웃아픔 같이 느낄때 사회 윤택/지나친 탐욕 끝내 파멸부르는 법/문민정부 개혁 「역사윤회」 입증… 종교계 자정노력 필요사월 초파일,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불보사찰 양산 통도사로 윤월하 방장스님(80)을 찾았다. 구하 경봉스님의 뒤를 이어 영축산을 지켜온 월하스님은 우리 불교를 이끌고 있는 정신적 지주이다. 영축산의 뻐꾸기 울음소리가 평화로운 정편전 방장실에 달린 마루에서 기자와 만난 스님은 평범한 우리 이웃의 마음속에 부처님이 계시다는 말로 자비의 실천을 강조하면서 모든이에게 감로수 같은 깨침의 소리를 들려 주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참뜻은 무엇입니까.

『그 분은 인간은 타고 날 때부터 불평등한 존재가 아니고 자주적이고 평등하다는 진실을 선언하고자 오신 겁니다. 그러한 선언을 통해 인간이 인격을 완성하면 성인에 도달할 수 있는 진리의 새벽을 연분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불교에서 사바세계를 고해이자 화택이라고 하는데 이같은 세계에서 인간이 잘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면 들려 주시지요.

『사바세계가 견딜만한 세상인데 지나친 탐욕 때문에 끝내는 자신의 몸과 집을 태우는 결과를 가져오는 겁니다. 그 원인은 육체에서 비롯되지요. 저마다 남보다 잘 입고,잘 먹고,좋은 집에서 살려고 하는데 이런 모든 탐욕이 육체가 있는데서 비롯된다는 말씀입니다. 부처님은 육체를 떠나서 살 수 있는 도리를 깨달았습니다. 바로 마음의 몸(법신)을 가지면 모든 욕망과 고통에서 자유로워짐을 직접 일깨워 보여 주신 거지요. 누구나 욕망에서 자유스러워질 때 진실한 삶을 살게 되지요. 이것이 탐(욕심) 진(성냄)·치(어리석음) 삼독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합니다』

▲5·6공의 일부 주역들이 문민정부의 개혁 과정에서 심판을 받는 것을 지켜보면서 불교의 가르침대로 역사에도 윤회가 있고 인과가 있음을 새삼 절감하게 되는데 이 점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역사 속에서 저지른 잘못된 행위가 당시에는 올바른 역사로 보여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잘못은 언젠가는 역사의 윤회를 통해 인과를 받게 됩니다. 문민정부의 개혁정책으로 역사의 윤회가 입증되고 있지요. 자작자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죄도 자기가 짓고 벌도 자기가 받는 겁니다』

▲문민정부의 개혁으로 말문을 돌려보지요. 개혁은 낡은 것을 청산하고 새롭게 거듭 태어나자는 시도일진대,이에 대한 스님의 생각을 밝혀 주시지요.

『과거에는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법을 무시하는 경향이 컸다고 봅니다. 위에서 구정물을 만들면서 아래보고 맑아지라고 한 격입니다. 그런 면에서 현 정부는 잘 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자기 내부의 개혁을 거치지 않는 개혁은 사회전체로 확산되기 어렵고 구두선이나 구호에 그치게 마련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보아오지 않았습니까. 자정하려면 인간을 병들게 하는 삼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삼독에서 해방될 때 자기 자신의 정화와 개혁이 이뤄지고 더 나아가 사회개혁으로 이어 집니다. 부처님이 인류 최초의 개혁자인 사실은 그 분의 가르침인 혁범성성(범부의 인격을 고쳐 성인으로 만든다)이 잘 말해 줍니다. 개혁은 이러한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좋은 동기로 출발한 개혁이 뒷 마무리가 잘 되고 보다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국민 모두도 정부에 힘을 보태야 되겠지요』

▲광주의 아픔은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요.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야 하되 그에 앞서 국민 모두의 인욕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인용은 참고 용서하는 겁니다. 진실 규명은 역사에 맡기자는 것이 늙은이의 우견입니다. 광주의 아픔과는 다른 얘기지만 이 시대 우리 국민은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탐욕에 길들여져 남의 허물을 용서하는데 인색합니다』

▲개혁 과정에서 나타났듯이 우리사회 지도층의 도덕 불감증을 지켜본 국민은 분노를 넘어 일종의 허탈감에 빠져 들기도 합니다. 공직자를 비롯한 지도층은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요.

『위정자들이 목민관 역할을 못한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요.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기 보다는 개인적 또는 정치적 이기주의에 우선해 가장 큰 덕목인 목민정신을 외면했어요. 목민정신을 되찾는 길만이 개혁을 성공시키고 국민의 신바람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지도층 일수록 자기를 낮추는 하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만,실상은 종교가 제 구실을 못한다는 비판도 큽니다. 흔히 우리나라의 모든 종교가 주장하는 신도 숫자를 합하면 우리 인구를 훨씬 상회하고 실제로 정부의 국세조사에서 나온 신자도 인구에 육박할 정도로 국민 대다수가 신앙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사회는 오히려 갈수록 메마르고 거칠어 갑니다.

『종교는 인간의 정신을 올바르게 깨우치도록 이끌어서 인격을 완성시키는데 있습니다. 불교에 국한시키자면 바로 정각(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거지요. 이러한 정신과 삶을 통해 고통받고 무명속에서 방황하는 사람을 구제하는 거지요. 부처님이 대비구세하기 위해 오신 것처럼 말입니다. 초파일 하루만이라도 불자들은 빈자일등의 정신을 되새겨야 합니다. 자기 등만 밝히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일체중생이 부처로 태어나는 것이 보다 중요합니다. 부처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가 얼굴을 돌리고 마는 이웃의 마음속에 계시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고 있지요. 다시말해 자비가 소외된 이웃을 통해 완성됐을 때 이것이 이타적인 삶이고 보살행입니다. 보살행은 바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고통의 분담이지요. 고통의 분담이란 요란한 구호보다 이처럼 이웃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승화시켜야 자연스럽게 이뤄 집니다』

▲종교계의 개혁 여론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종교도 물질만능의 풍조에 오염됐다는 여론을 듣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가 착하게 살라고 가르치면서 심지어 그런 가르침을 전하는 성직자들 중에도 말 뿐이지 실천을 외면하는 사람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종교계의 개혁은 어디까지 종교계 내부의 자정 노력과 의지에 의해 이뤄져야 합니다. 부처님은 중생을 제도하는 모든 방편과 위신력을 갖고 계셨고 위신력 중에는 물리적인 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힘으로 중생을 지배하거나 교화하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대비로만 힘을 삼았지요. 종교계의 개혁은 자비와 사랑을 되찾아 이를 실천하는 노력으로 이뤄져야 하지요』

▲종교간의 갈등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불교의 경우 최근 군부대의 법당 폐쇄와 훼불사건 등으로 상대적인 피해의식이 크다고 느껴집니다. 다종교 사회에서 모든 종교가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들려 주시지요.

『사교를 제외하고는 나쁜 것을 가르치는 종교는 없습니다. 저는 승려이지만 불자들에게 타종교가 나쁘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남의 종교에서 배울 점은 배우라고 장려하지요. 중국의 임제선사는 부처에도,조사에도,부모형제에게도 얽매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야만 바른 견해를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예요. 정말 자기가 믿는 종교의 진수를 체험하려면 그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어떤 틀이나 속박속에 갇혀서는 안됩니다. 「눈 밝은 종교인」이라면 부처나 예수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묵묵히 선을 행합니다』

▲지식인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요. 그동안 지식인들이 바른 말 해야 할 시기에는 침묵을 지켰다는 따끔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살아있는 말(언)을 통해 해탈을 얻고 죽어있는 말로 생사에 결박당한다는 비유가 있습니다. 지식인의 올바른 사회적 역할을 말해주는 비유지요. 사실 정부를 비판할 줄 아는 사람만이 정부가 어려울 때 협조할 수 있는 겁니다. 수처작주라는 말처럼 어느 곳이든지 자기 자신이 진리의 주인공이 돼 있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바른 말을 합니다. 그리고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을 매도하는 사회는 결코 발전할 수 없습니다』

▲방장스님께선 누구도 모르게 이타행을 많이 해오셨다고 듣고 있습니다.

(한동안 빙그레 미소만 머금은채 대답을 피하다가) 『그저 흉내만 낼 뿐인데…』

월하스님은 얼마전 무의탁 정신대 할머니들의 보금자리 건립에 쓰라고 남몰래 1억5천만원을 기탁했는데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대노했다는 후문이 나올 정도로 자비의 실천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고 있다. 다시 이 얘기를 꺼냈더니 『결코 그런 일이 없고 아마 누군가 내 이름으로 기탁한 모양이야』하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대담 문화부 이기창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