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핵정치협상 불연계 천명불구/핵포기땐 국교정상화 길 가능성미국은 지난 92년 1월의 뉴욕회담에 이어 두번째로 북한과 정책담당자급 고위급회담을 갖기로 합의함에 따라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는 순리적인 기회를 제공하게 됐다. 그러나 북한이 이번 회담에서 핵무기 개발을 고집하거나 핵무기 개발포기를 정치이득과 맞바꾸려든다면 회담은 지난해 있었던 회담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결실없이 끝날 가능성이 크다.
미·북한 고위급회담은 미국의 이니셔티브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북한측의 강력한 요구와 한국측의 측면지원으로 이뤄진 면이 강하다. 북한이 미국과의 직접협상을 원하는 것은 북한 정권의 집념이랄 정도로 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 휴전협정 당사자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반도문제를 다루는 협상에서는 휴전회담 서명자가 아닌 한국을 제쳐두고 미국과 직접 담판해야 한다는 입장을 줄곧 고수해왔다.
이번 미·북한 고위급회담의 성사를 위해 한국정부가 눈에 띄게 지지를 표명해온 것은 북한을 고립으로부터 국제사회로 끌어 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한국정부는 미국이 아직 미·북한 고위급회담에 대해 입도 뻥끗하지 않았을 때 회담이 곧 열릴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심지어 누가 대표로 갈 것이라는 등의 외교적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정도로 회담 재개를 적극 지지했다. 지금까지 「한국의 어깨너머로 미국이 북한과 어떤 관계를 가질까 고심하던 태도」와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이번 미·북한 고위급회담을 대하는 태도는 그렇게 적극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우선 북한정권이 갖는 이미지가 너무 나빠 북한과의 대화를 갖는다는 자체를 썩 마음 내키는 일로 여기지 않고 있었다.
부시 전 행정부는 대통령인 부시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북한을 「깡패집단」이라고 부를 정도였고 클린턴 정부가 들어선후에도 「거짓말정권」 또는 「무법자」라는 용어가 북한을 규정하는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어 누구도 북한과의 교섭에 선뜻 나서려는 측이 없었다.
법률체계적으로 북한은 아직 유엔 결의에 의해 침략자로 규정돼있는 상태이고 미국은 이 유엔 결의에 의해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북한이 바라는 것처럼 미·북한간 직접 협상을 통해 국교정상화 회담을 할 입장은 아니다. 이런 면에서 미국은 두서너가지의 최저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회담제의에 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는 핵문제를 풀기위해 미국과 반드시 협상을 해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을 적어도 배척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북한 핵문제는 미국과 북한간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려는 국제사회와 북한간의 문제라는 점을 거듭 강조해왔다. 바우처 대변인은 이번 뉴욕 회담을 북한의 핵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뤄지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미국이 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가능한한 모든 정치적 해결을 강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둘째는 한국정부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미·북한간 회담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측이 한국정부의 바람보다는 한급수를 낮춰 차관보급으로 고위회담을 추진한 것은 따지고 보면 한국정부에 대한 배려인 셈이다.
미국에 대한 북한의 요구사항은 지금까지 충분히 알려져 있다. 주한미군 철수,한반도의 핵우산 철폐,팀스피리트훈련 영구중단,유엔 경제제재조치 반대,미·북한 무역증진,그리고 결론적으로 미·북한간 국교정상화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북한측 요구를 적어도 핵무기와는 직접 연계하지는 않겠다는 점을 명백히 해왔다.
다만 북한이 핵무기개발을 포기하면 이런 조치들을 검토하겠다는 말하고 있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고 군사시설이라고 주장하는 영변의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국제사회의 신의를 회복하는 첫 단계이기 때문에 미·북한간 국교정상화의 길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개발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번 회담은 지난번 뉴욕회담과 마찬가지로 허사로 끝날 것이 확실하다.<워싱턴=정일화특파원>워싱턴=정일화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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