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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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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3.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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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뿔도 단김에 뺀다』는 속담이 있다. 무슨 일이든 기회가 왔을 때 바로 해치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못할땐 벌집 쑤신듯 말썽만 번지면서 일 자체도 제대로 치러내기가 어려워진다는 생활의 지혜이다. 최근 말썽과 파문의 연속인 슬롯머신 수사도 어찌 보면 과거 쇠뿔을 단김에 빼지 못했기에 오늘에 와서 덧난 감이 없지 않다. ◆이제와서 차츰 드러나고 있는 사실이지만 지난 89년말∼90년 4월 사이 정덕진씨 형제는 안기부 수사국이 주도하고 국세청과 은행감독원이 참가한 정부 조사팀에 철저한 조사를 당했고 이 과정에서 각계 비호세력 1백여명의 명단이 파악된바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당시 정씨나 비호세력에 대한 사법처리는 유야무야된채 세금추징 조치만 내려졌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조사착수 동기가 야당측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혐의 때문이었고,내사결과 안기부를 포함한 정치·권력기관의 비호세력들이 드러내기 거북할 정도로 많았던데다 정씨측의 집중로비도 주효한 것이 결과적으로 쇠뿔을 단김에 뽑을 수 없게한 원인이었던 듯하다. 문제는 그 탓으로 오늘의 검찰수사가 정도 이상으로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당시의 어설프게 혼난 경험이 정씨 일당에게 오히려 더욱 철저한 돈세탁은 물론이고 미국이민과 같은 도피수단 마련과 더 한층 교묘한 로비술을 터득케 했음은 짐작되고도 남는다. 그 결과 오늘의 검찰수사가 집중 추적에도 불구하고 90년까지의 범행수준에 멈춰 있는데다 그나마 물증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이다. 또 당시 비호세력으로 파악됐던 인사들마저 비호물증을 씻어버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검찰수사는 대통령의 추상같은 질책과 국민적 관심속에 제살을 베는 고통과 증거찾기 어려움의 2중고에다 오히려 범인들의 입만 바라보는 딱한 처지에 놓인 감이 없지 않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는 속담의 무서운 뜻이 새삼 실감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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