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죄기」 여론속에 입·몸조심/일부 “수사 원칙없다” 비난도요즘 정치권에서는 일련의 사정활동에 대해 『어딘지 모르게 위태롭게 가고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사정의 칼날이 언제 자신에게 치고 들어올지 모르는데서 오는 불안감이 깔려있기도 하지만 『사정이 갈팡질팡하면서 엉뚱한데로 가고 있는것 아니냐』는 식의 우려이다.
김영삼대통령도 이같은 점을 감안해 지난 21일 검찰에 대해 성역없는 수사와 아울러 검찰내부의 사정을 지시,일단 사정의 방향을 고쳐잡았다. 김 대통령 특유의 정면돌파로 슬롯머신 사건에 걸린 사정의 고비를 넘는데는 성공했으나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사정의 철학」이 제시되지 못한데서 비롯되는 근원적인 문제점이 남았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민자당내에서도 민정계나 민주계나 할것없이 『슬롯머신 사건이 새 정부가 봉착한 첫번째 난관』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소 심하게 얘기하는 사람들은 『출범 1백일도 안됐는데도 이렇게 왔다갔다하는 것을 보니 사정당국이 김 대통령의 의지를 잘못 알고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슬롯머신사건의 처리에 개혁정책에 대한 중간평가가 걸린 것처럼 정국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현 시점에서는 개혁이 곧 사정이고 사정은 또 슬롯머신 사건수사와 동의어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때문에 슬롯머신 사건을 두고 5공초기에 터졌던 이철희·장영자사건과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민정계의원은 『그때는 물론 권력층 내부의 갈등이란 점이 다르기는 했지만 5공의 개혁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았다』면서 『슬롯머신 사건을 「미운 사람」 몇명 잡아넣고 끝낼 경우 새 정부의 개혁정책도 국민의 믿음을 잃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사정의 도덕성은 새 정부나 개혁정책의 도덕성으로 이어지고 이는 슬롯머신사건 등 일련의 비리사건 처리에 대해 국민의 긍정적 평가가 내려질때 지켜질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개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정이 아니라 잡아넣기식 사정』이라는 평가가 우세한게 현실이다. 한 민주계 인사도 『재산공개때까지만 해도 잘나갔는데 그뒤로부터 조금씩 사정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며 불안감을 털어 놓았다.
정치권에서는 이같은 현상의 원인을 「계획사정의 부재」에서 찾는게 일반적 기류인 것 같다. 새 정부가 문민성을 내세우면서 각 사정기관의 자율성을 1백% 인정해 주었지만 30여년이상 권력측의 고삐에 잡혀왔던 사정기관들이기에 정상궤도를 찾지 못하고 불협화음을 자아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경찰이 경원대 입시부정사건이후 숨을 죽이고 있고 안기부가 국내 정치분야에서 손을 떼면서 검찰이 유일한 사정기관인 것처럼 부각됐으나 검찰수사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인게 사실이다. 슬롯머신사건으로 박철언의원을 구속하면서 보인 수사태도는 누가 봐도 「표적수사」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러면서도 검찰내부는 물론 정치권 경찰 안기부에까지 산재해 있는 비호세력에 대해서는 김 대통령의 질책이 없었다면 수사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여주기도 했다.
또 동화은행 사건수사에 있어서도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민자당 중진의원은 『금융계 비리를 손대려 했다면 갓 생겨난 동화은행보다 훨씬 비자금 규모가 큰 다른은행을 먼저 치는게 맞다』면서 『다른 은행장들은 그냥 인사조치만 하면서 유독 안영모 전 은행장만을 구속한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동화은행의 주요 로비대상이 이북출신 공직자들이었다는 것은 금융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는데도 이원조 김종인의원을 겨냥,자의적 수사라는 지적을 받을수 밖에 없게됐다』고 덧붙였다.
검찰수사가 형평을 잃은 자의적 수사라는 인상이 심어지면 사정의 대상이 되는 사람도 승복치 않을 뿐더러 『재수없거나 밉게 보인 사람만 걸린다』는 시각만 낳게된다.
민자당내에서도 『지금 검찰은 새 정부의 개혁구도에 맞지않게 독자적으로 움직이면서 오히려 개혁에 부담을 주는 측면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 고위 당직자는 『검찰이 청와대의 컨트롤 밖에 있는 것은 물론이고 검찰 내부에서조차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떼밀려다니는 듯하다』며 『그러다보니 일은 장황하게 벌여놓고 주어 담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 대통령이 검찰 내부의 사정을 지시한것도 이같은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최근의 청와대 여론 조사에서 개혁정책의 지지도가 처음으로 90% 이하로 떨어졌다는데서 알수있듯이 사정이 이상기류로 접어들었음을 감지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검찰내부의 구조적 문제점을 바로 잡지 않고는 사정을 본궤도에 올려놓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한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일이 생길때마다 단편적 처방을 내놓는 것보다는 사정의 철학이 제시되고 그에 입각한 「계획사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한마디로 중구난방식으로 전개되는 사정방식은 개혁에도 안정에도 도움이 되지않는다는 얘기다.
한 민자당 의원은 이와 관련,『경제개발의 초기단계에 계획경제가 필요했듯이 30년동안 구조적으로 깊은 뿌리가 박힌 비리를 없애기 위해선 계획사정이 있어야 한다』며 『어느 정도 사회구조가 정상을 되찾은 다음에야 자율사정이 가능할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은 사정의 난조가 개혁정책 추진에 역기능을 할 경우 그 부담은 정치권에 돌아올수 밖에 없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신재민기자>신재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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