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나라 검찰의 조직과 체계는 일본의 그것과 크게 다를바 없다.문제는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공권력을 집행·수호하는 검찰인들의 확고한 책임의식과 정치권력을 보는 자세에 차이가 있다. 대정치권력의 경우만해도 우리 검찰은 눈치보기가 거의 체질화되다시피 한 반면 일본 검찰은 결코 굽힘이 없이 당당하다. 이른바 권력형 비리가 터졌을때 일본 국민들은 검찰,특히 동경지검 특수부가 손을 댔다하면 발을 뻗고 잔다. 뿌리끝까지 파헤쳐 진상을 밝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런 기개로 정계거물인 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 전 총리와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자민당 부총재도 구속시키는 등 한점의 의혹도 남기는 일을 수치로 여긴다.
우리는 어떠한가. 사건이 발생하면 권부쪽의 동향을 살피고 여론이 들끓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뿌리를 뽑을듯이 호언하다가는 적당한 선에서 덮는 일이 많아 국민들에게 의혹과 불신만 안겨주곤 했던 것이다.
때문에 국민들은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신임 김두희 법무장관이 『부정부패 척결과 국민기강 확립 등을 위해 진력하겠다』,박종철 검찰총장이 『단편적이고 일과성 수사는 지양하는 한편 각 분야에 내재된 고질적 비리를 성역없이 수사하겠다』고 다짐한바 있어 검찰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었다.
더구나 검찰이 동화은행 비자금 살포와 슬롯머신 업계의 대부 정덕진씨의 부정사건에 착수하면서 『진짜 성역없는 수사를 보여주겠다』 『정치인을 포함,누구든 연루된 인사는 가차없이 공개소환,엄벌하겠다』고 했을때 달라진 검찰의 모습을 보게 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때문에 근 20여일동안 국민들은 검찰의 비리와의 전쟁을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봤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아니었다.
처음 일부 정치인과 검찰 간부의 연루설이 퍼지고 검찰측이 『국회가 폐회되면 모모의원을 소환하게 될 것』이라고 운을 띄우더니 차츰 우왕좌왕하는 사이 이원조의원이 도피성 출국을 한후에는 관련자를 엄삼탁 전 안기부 기조실장과 박철언의원으로 국한하는 쪽으로 기울고 수사내용도 공개에서 함구로 바꾸는 등 갈팡질팡하고 있다.
결국 어마어마한 것을 파헤칠듯하던 수사가 실은 정씨형제에 의존하고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슬슬 축소 은폐의 인상을 주고 있는데는 어이가 없다. 이같은 수사자세는 한마디로 여전한,변함없는 구태 그대로였다.
검찰은 적어도 신길용경정과 정씨와의 관계가 밝혀졌을때 대질 등을 통해 본격수사에 나서는 한편 광주지검의 최인주과장이 자살했을때 검찰 내부의 비호인사들을 파헤쳤어야 했다. 결정적인 단서가 돌출하는데도 구경만 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끝내 김 대통령이 노발대발하며 「성역없는 비리수사」를 재차 지시하자 검찰이 뒤늦게 내부 사정자가수술에 착수하고 슬롯머신업계의 흑막수사에 결의를 보이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지만 국민들로서는 씁쓸하기 짝이 없다.
아무튼 검찰이 구태와 타성을 벗지못하는한 국민의 신뢰를 받기는 요원하다. 대오각성하고 새출발해야 한다. 큰소리치고 요란한 소리를 내어 국민에게 잔뜩 기대만 갖게 했다가 흐지부지 유야무야해서 의혹과 실망만을 안겨주는 자세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동경지검의 특수부 검사들이 대형비리 수사때 혹시나 그릇된 여론의 영향을 받을 것을 우려,담당검사들이 국민과 기자들의 눈을 피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완벽한 수사를 매듭지은뒤 뚜껑을 열때는 벼락을 쳐 관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잡아넣는 식의 수사방식을 우리도 깊이 참고해야 할 것이다.
검찰은 앞으로 재수사본격수사에서 내부의 비호자를 철저히 가려내는 한편 정계·경찰 등의 비호세력도 조사,명단을 밝혀야하고 또 동화은행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정치인과 전 고위관리들의 명단과 뇌물의 내역 역시 밝혀야한다. 나아가 억울하게 여론에 매도되는 사람이 없어야하겠지만 온국민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만큼 반드시 수사내용을 그때그때 공개하는게 필요하다. 어쨌든 비리에 일단 메스를 대면 끝까지 진실을 파헤쳐 조금이라도 의혹의 찌꺼기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
수십년간 쌓여온 남산만한 부정부패 가운데 검찰이 겨우 바윗덩어리 규모의 슬롯머신과 동화은행 사건수사에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쉽기 짝이 없다. 국민은 지금부터 검찰의 새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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