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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럴 수 있나” 수사에 불만/박철언의원 출두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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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럴 수 있나” 수사에 불만/박철언의원 출두하던 날

입력
1993.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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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여인 돈가방 주장 조목조목 반박/부인에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질 것”/국민당원들 몰려와 “정치보복 중단하라” 구호○…박철언의원은 검찰 출두일인 21일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양재동 자택주변을 산책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박 의원은 이날 아침 6시께 일어나 수행비서 1명을 대동한채 30여분동안 인근 공원을 산책한뒤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출두를 앞둔 착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잠을 제대로 못이룬듯 초췌한 표정이 역력했다. 가벼운 점퍼차림의 박 의원은 자리에 앉자마자 『정말 이렇게 할 수 있느냐』며 하소연조로 자신에 대한 검찰수사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슬롯머신사건이 무언가 이상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며 『오늘 검찰에 들어가 정덕일씨·홍성애씨와 3자 대면을 해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검찰이 저쪽편(정씨와 홍씨측)의 말만 듣고 무언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이라며 애써 자위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홍여인이 주장했다는 「사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를 잊지 않았다.

박 의원은 우선 90년 10월에 「부탁」을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 『당시는 정무장관직을 그만뒀던 때라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정덕일씨가 자신에게 5억원의 헌수표 다발이 든 돈가방을 내보였다는 주장에 대해 『이게 무슨 마약거래라도 되느냐』면서 『전혀 근거없이 지어낸 말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그는 『내가 덕일씨와 「동지합시다」라는 말을 나눴다고 얘기하지만 초면에 사회적 입장도 있는데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한번 생각해보라』고 반문하기도.

박 의원은 또 『밤 9시에 전화해서 건네받은 5억원은 정치자금이고 그 돈은 다른 사람이 관리하고 있다고 내가 말했다는데 내가 무슨 이유로 홍씨에게 「전화보고」를 하겠느냐』며 『검찰이 나를 이토록 꽁꽁 묶을 수 있느냐』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박 의원은 『홍여인이 이같이 주장하는 것은 아마 내 주변사람들의 은행계좌를 추적,예금통장에 입금된 돈을 그 자금으로 뒤집어 씌우려는 계략일 것』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그는 이어 당시 청와대 사정비서관인 김영일 민자당 의원에게 압력을 가한 것이 사실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가 비록 그분과는 대학(서울대 법대) 동창관계이기는 하지만 서로 신중한 관계』라며 『설령 내가 그런 부탁을 했더라도 사정비서실 조직특성상 김 비서관이 그런 명령에 움직이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박 의원은 이와함께 『검찰이 죄있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고한 사람들의 누명을 풀어주는 인권옹호자로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검찰의 공정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검찰의 양심과 사법부의 존엄을 믿는다』면서 『나의 무고함이 입증되고 명예회복이 되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라며 탄식조로 말했다.

○…박 의원은 이어 지난 25년간의 공직생활을 회고하며 다소 감상에 젖기도 했다.

그는 『지난 5공시절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해 살얼음판을 걸어왔으며 북방외교를 위해 유서를 써놓고 다니기도 했다』며 『이제 이렇게 누명을 쓴 입장에 서있으니 참으로 가슴이 무겁다』고 해 권력무상을 새삼 실감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경북 선산에 있는 선친묘소로 대구에 계신 팔순노모를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할 것 같아 불효가 막급하다』며 『특히 일 때문에 가족들에게 가장노릇 남편노릇을 제대로 못한 것이 못내 가슴아프다』고 말하며 끝내 눈시울을 적셨다.

박 의원은 이에 앞서 대구의 팔순노모에게 전화를 해 안부인사를 하기도 했다.

○…이날 양재동 자택에는 이른 아침부터 친척 대학동창 법조계 인사 및 월계수회원 등 30여명이 찾아와 박 의원을 위로했다.

이날 국민당에서는 한영수·유수호의원이 찾아왔는데 유 의원은 자신이 직접 박 의원의 변호를 자청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낮 12시께 외출해 이발을 하는 등 구속에 대비했다.

그는 낮 12시40분께 자택으로 돌아와 목욕을 했으며 부인과 큰딸 아들 등과 함께 검찰출두에 앞서 마지막 오찬을 했다.

박 의원은 자택에 머물며 신변을 정리한뒤 하오 4시40분께 검찰청사로 향하며 가족을 비롯한 친지 및 비서진 등과 작별의 악수.

박 의원은 현관에서 부인 현경자여사에게 『남들이 뭐라해도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며 손을 꼭 잡은뒤 아들 종현군(17)에게 『아빠가 없는 동안 대신 가장노릇을 잘하라』고 격려했다.

박 의원은 이어 큰딸을 포옹하며 달랜뒤 2∼3일전부터 집에 와있던 장인·장모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박 의원은 하오 5시 정각 서울지검에 출두,미리 나와있던 국민당 당직자 및 당원 2백여명에게 둘러싸인채 김동길 대표최고위원과 악수를 나눴다.

김 최고위원은 『나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한 박 의원 등을 가볍게 두드려 격려한뒤 한동안 귀엣말을 나누었다.

이때 국민당원을 대표한 구재춘 용인지구당 위원장이 「박 의원에 대한 정치보복 및 편파수사를 중지하라」는 성명서를 낭독한뒤 『정치보복 중단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쳐댔다.

○…박 의원은 1백여명의 사진기자들에게 상기된 얼굴로 포즈를 취한뒤 심경을 묻는 기자들에게 『비통하다』 『정치보복이다』라고 짭게 대답했다.

이어 당원들의 연호속에 취재진들과 뒤엉켜 엘리베이터앞에 도착한 박 의원은 맸던 넥타이를 풀어 김동길 대표최고위원의 목에 걸어줬다.

박 의원에 대한 철야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비서관 및 당직자들은 10층 대기실서 기다리며 간간이 11층으로 올라와 『식사는 제대로 했느냐』고 묻는 등 근심스런 표정이었다.

이에 앞서 국민당의 유수호의원 및 박한상 박병일 김동호변호사 등 4명은 하오 6시30분께 유창종 강력부장을 방문,변호사 선임계를 제출한뒤 박 의원을 접견했다.

박 변호사는 접견내용을 묻자 『박 의원이 홍 검사에게 진실을 밝혀달라고 주문했으며 비교적 담담한 표정이었다』고 전했다.<권대익·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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