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수수·돈세탁에 안성맞춤/발행·유통과정 신분은폐 쉬워/구린돈매개 「제도적장치」인셈자기앞수표는 움직이는 가명계좌다. 현금과 다름없이 유통되면서도 수억,수십억원의 거액을 단 한장으로 주고 받을 수 있는 편리한 매개수단이다. 때문에 거액이 은밀히 오갈때나 돈세탁 과정에서 반드시 자기앞수표가 이용된다. 금융기관의 가명계좌가 검은 돈의 비밀통로라면 자기앞수표는 검은 돈의 매개수단이다. 가명계좌와 수표가 검은 돈을 유통시키는 일종의 제도적 장치인 셈이다.
자기앞수표는 발행은행이 현금지급을 보증한 일종의 무기명 예금보관증이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현금처럼 양도가 가능하고 최종 소지자가 발행은행에 현금지급을 요청하면 은행은 당연히 지불할 의무가 있다. 이때문에 자기앞수표의 유통물량은 해마다 30% 이상씩 늘어 10만원권 자기앞수표는 1만원권 지폐에 이어 사실상 제2의 중심화폐로 자리잡았다. 10만원권 자기앞수표의 유통물량은 1천원권이나 5천원권 화폐의 6배나 된다.
자기앞수표는 거래자의 정체를 숨기기 쉽고 거액유통이 자유롭기 때문에 뇌물이 오갈 때나 돈세탁과정에서 반드시 이용된다. 선거철만 되면 자기앞수표 발행이 급증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자기앞수표의 맹점은 그 자체가 무기명 상품인데다 발행과 유통을 가명으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금을 가져와 수표발행을 요청하면 은행측은 이때 신분확인을 요구할 수 없는게 현실이다. 규정상으로 수표발행시 실명확인을 요구할 의무가 없다. 물론 특정계좌를 통해 자기앞수표로 예금을 입금하거나 출금할 때는 창구직원이 계좌번호를 수표 뒷면에 적어 넣도록 해 거래자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가명계좌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정체를 숨길수 있다. 유통과정에서도 뒷면에 이서를 요구하지만 실명이서가 이뤄지길 기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부는 지난 90년 금융실명제를 추진하면서 자기앞수표 발행축소 및 실명발행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시행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이런 이유로 자기앞수표를 없애자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정부당국은 자기앞수표제도가 오랜 관행인데다 그 기능을 대신할 마땅한 대체수단이 없다는 점 때문에 고민이다.
또 다른 허점을 이자소득에 대한 가명실명간 차등과세의 문제다. 가명계좌에 대한 이자소득세는 실명계좌보다 3배나 높은 64.5%의 세율을 적용받지만 이는 실제로 있으나마나한 규정이 되고 말았다. 차명거래가 가능한 상황에서 남의 이름을 얼마든지 도용할 수 있고,남의 이름을 굳이 쓰지 않더라도 주민등록번호를 조작해 가공의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하더라도 이를 가려낼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자에 대한 세금은 원천징수돼 국세청(관할 세무서)에 통보되는데 국세청도 이처럼 차명을 위장한 실질적인 가명계좌를 일일이 가려내지 못한다는 것이 관계자의 말이다.
금융기관의 거액 예금유치 경쟁도 검은 돈의 은신,도피에 한몫을 거든다. 대부분의 은행들이 예금잔고가 많고 신분 노출을 꺼리는 고객들의 거액예금을 여러개의 차명계좌로 분할해주기 위해 수십명분의 도장과 주민등록번호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있다. 이때 도용되는 명의는 주로 은행거래가 많지 않은 시골이나 달동네 주민,공단지역 근로자 등의 것으로 거래처나 직원들을 통해 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잇다. 일부은행에서는 고객이 원할 경우 자금 해외도피를 돕기까지 한다. 한 금융인은 그동안 금리는 묶여 있는 상황에서 자금수요는 늘 초과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금융기관은 어쩔수 없이 변칙영업이라도 하지않을 수 없었다고 실토했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결국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금융실명제 실시가 현실적으로 가장 포괄적이고 효과있는 대책이지만,그전에라도 자기앞수표 발행과 입금시 실명이서 의무화,자기앞수표 발행 단계적 축소,차명거래시 타인명의 도용금지,금융기관의 주민등록 전산망 확충 등 제도적인 보완장치를 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김상철기자>김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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