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 출범이후 처음 열린 161회 임시국회가 20일 막을 내렸다. 25일동안 열렸던 이번 국회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등 25건의 벌률을 통과시켰는데,구태의연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 점도 있었지만,상대를 존중하는 여야관계를 회복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진전을 보였다.지금까지 국회에서의 여야관계는 극단적이고 대립적이었다. 여당은 권위주의적인 통치자의 충직한 시녀로서 야당의 존재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고,여당의 태도가 그러하니 야당은 점점 더 투쟁적일 수 밖에 없었다. 민주정치의 요체인 「대화와 협상」은 우리 국회에서 실종된지 오래였다. 「협상」이란 곧 「사쿠라」를 의미했고,야당의 존재이유를 부인하는 것일 때가 많았다.
야당은 명분을 지키려고 발버둥쳤고,여당은 정권유지를 실리를 향해 독주했다. 명분과 실리가 만나는 행복한 순간은 거의 없었다. 야당 의원들이 의사당에 이불을 덮고 누워 농성을 시작하면 국민은 곧 여당 의원들이 국회 별관에서 도둑질하듯 날치기로 법안을 통과시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온갖 시위가 그치지 않던 지난 30여년동안 시위대조차 의사당을 외면할 만큼 국회는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었다.
이번 국회는 달랐다. 여와 야는 대화를 하고 협상을 했다. 김영삼대통령의 과감한 개혁드라이브로 입지가 좁아졌던 민주당은 야당의 역할을 잘 해냈고,국민에게 믿을만하다는 인상을 남겼다. 8일 국회 본회의에서 「12·12사태」에 대한 황인성총리의 견해를 묻고,『12·12는 불법이 아니다』라는 답변이 나오자 이를 문제삼아 『12·12는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인 사건』이라는 청와대의 해명을 끌어낸 것은 민주당이 거둔 큰 성과였다.
청와대가 야당의 공격에 신속하게 대응하여 13일 「12·12사태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을 발표한 것도 돋보였다. 야당이 뭐라고 공격하든 들은 척도 안하고 무시하거나 아전인수격인 변명을 늘어놓던 과거의 행태에 익숙했던 국민들은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청와대가 13일 한꺼번에 「12·12사태에 대한 입장」과 「5·18 특별담화」를 발표한 것은 시기적으로 너무 빨라 역사논쟁을 불필요하게 앞당겼다는 일부의 우려도 있으나,이런 우려와 관계없이 야당과 청와대가 볼을 주고받는 광경은 「살아난 정치」를 실감케 했다.
『오늘 한국에서 벌어지는 개혁은 법치가 아닌 인치다』라는 일본신문의 지적이 있었고,『인치가 아닌 민치』라는 반박도 나왔는데,이번 국회는 개혁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인치·민치」 논쟁을 정리했다. 대통령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수록 국회와 야당의 역할도 커진다는 것을 이번 국회는 일깨워줬다. 국회는 오랜만에 「정치」를 구현하는 재미를 국민에게 되돌려줬다.
정치구경이 재미있으려면 여야가 규칙을 잘 지켜야하고,당당해야 하고,생산적이어야 한다. 이번 국회는 국민에게 다음 국회에 대한 기대를 심고 폐막했다. 미흡한 점이 있었다해도 문민시대의 첫 국회는 그것만으로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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