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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연한 패자의 뒷모습/이영성 정치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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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연한 패자의 뒷모습/이영성 정치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3.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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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하오 3시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이만섭의장이 조탁된 언어의 폐회사를 하고 있다.이 의장이 폐회사를 마치고 힘있게 의사봉을 치는 순간,사진기자들의 카메라 앵글은 의장석을 향하지 않았다. 약속이라도 한듯이 카메라 렌즈가 집중된 곳은 검찰소환을 앞둔 박철언의원쪽이었다.

얼마후 의사당 중앙의 로텐다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본회의장을 나오는 여야 중진의원들은 아무런 시선도 받지 못했다. 플래시 세례와 기자들의 질문은 박 의원에게 쏠렸다.

그는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정치인이었다. 6공에서의 정무장관 시절,북방외교의 밀사시절,그가 나타나면 늘상 북적거림이 따랐다.

그러나 이날의 북적거림은 뭔가 달라도 달랐다. 우선 박 의원의 표정이 어둡고 그의 어깨는 힘이 빠져 있었다. 기자들도 웃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박 의원의 말이 처연한 단어들로 색이 바래져 있었다. 「6공의 황태자」 시절 힘과 자신감이 가득찼던 그의 말을 상기해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권력은 강하고 긴 것 같지만 사실 짧고도 약하다』 『패자로서 겪는 시련』 『굿판에서의 제물은 나를 마지막으로 해달라』 『이제 어둡고 외로운 길을 가게 됐다』 『선친묘소를 가보고 싶지만 그리 못해 마음 아프다』… 등등.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온통 외로움과 서러움 투성이었다. 본회의가 시작하기 전에 박 의원이 신상발언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으나 그는 이마저 하지 못했다. 박 의원은 그 이유를 『승패가 갈라진 마당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패자의 논리를 폈다.

의사당 수위와 악수를 하고 차에 오르는 그의 모습은 고별의 쓸쓸함마저 느끼게 했다.

그러나 그를 「이해」하는 분위기는 별로 없는듯했다. 그가 비장한 어조로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는 그 현장에서,한 야당 의원이 조용히 던진 『업보야,업보…』라는 독설은 시시하는 바가 컸다.

그 야당 의원은 『박 의원 때문에 울음을 삼켜야했던 사람이 많았다』고 부연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는 옛말이 너무도 맞아 떨어지는 현장이었다. 그리고 이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될 장면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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