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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 주식전환」 득보다 실/정운찬(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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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 주식전환」 득보다 실/정운찬(한국논단)

입력
1993.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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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5월17일 청와대에서 「신경제 1백일 계획 50일 중간 추진상황 보고대회」란 긴 이름을 가진 모임을 열었다. 이자리에서 이경식부총리는 한국경제가 움직이는 분위기는 잡았으나 경제활성화 효과는 1백일 계획이 끝난 금년 하반기에나 나타날 것이란 아리송한 보고를 했다고 들린다.무엇을 위한 중간 점검이었던가. 아마도 이른바 신경제 주체들이 1백일 계획 발표시 50일이내에 무엇인가 이룰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에서 중간점검을 하겠다고 한 약속 때문이리라. 경제는 몇가지 정책을 썼다고 하루 아침에 좋아질리 없는데도 말이다.

설사 거시경제지표가 일시적으로 조금 나아진들 무엇하겠는가. 한국경제는 현재 엔고와 미국 경기회복을,중국 특수 등으로 인하여 조금 기지개를 펴고는 있으나 물가가 심상치 않고 또 기업의욕이 살아나려면 아직도 멀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기부양보다는 체질개선이 훨씬 더 중요하다.

물론 체질개선의 노력은 비용도 많이 들고 그 성과가 더디게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의 각종 개혁이 계속 국민을 어루만져줄 수만 있다면 경제개혁의 부작용이 다소 나오고 또 체질개선의 효과가 다소 더디게 나타나더라도 국민은 이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지난날 권위주의시대에는 비민주적 정치에 불만인 국민을 무마하기 위해 무리수를 써가면서 가시적 경제성과를 추구했으나 지금과 같은 정치민주화 과정에서는 경제면에서 어느 정도의 단기적 고통을 참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체질개선이 어느 때보다 아쉬운 시점에서 최근 이경식부총리는 은행의 부실채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이 부실채권을 포기하는 대신 기업이 주식을 은행에 인도하라고 제안하였다. 나는 이 방안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담당 부총리가 한국금융의 핵심과제 가운데 하나인 부실채권 문제해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것을 공론에 부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은행은 정부규제와 고도성장 정책의 부산물로 천문학적 규모의 부실채권을 안고 있다. 은행은 정부가 명령하는대로 대출해주고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해결해주기를 기대했다. 뿐만 아니라 부실기업과 운명을 같이할 수 밖에 없는 은행은 기업이 망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계속 대출해주어야 하는 악순환이 진행되어왔다.

경제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 부실기업(그것이 대기업이라고 할지라도)은 도태된다는 원칙을 확립하여야 한다. 물론 이것은 은행이 자율적으로 대출심사를 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은행이 대출심사를 제대로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부실채권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방안을 몇가지 생각해보면,우선 특수은행을 설립하여 기존의 부실채권을 인수하게 하고 각 시중은행은 새로이 출발하는 방안이 있다. 문제는 이 특수은행을 어떻게 설립하느냐하는 것인데,부실채권의 원인이 주로 정책금융에 있었으므로 정부가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정부지원하에 공채발행을 통해 설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한국은행의 특융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인플레이션도 우려되고 또 은행에 대한 특혜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은의 최종 대부자기능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또다른 방안은 은행의 예금이자율을 묶고 대출이자율을 인상하여 은행수지를 개선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그나마 높은 대출이자율을 더욱 높이는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부총리의 제안대로 스와프거래의 형식으로 은행이 채권을 포기하고 기업이 주식을 은행에 인도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아마도 채권·주식전환은 부실채권 문제와 대기업 소유분산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일석이조의 아이디어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은행이 기업의 사정을 잘 알아서 경영지도를 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 은행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기업을 잘 지도할 정도로 기업상황에 대해 잘 알지를 못한다.

또한 채권·주식전환은 오히려 효율성을 증진시키는데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은행이 기업의 주식을 소유하면 기업에 방만한 대출을 해줄 뿐만 아니라 기업의 성과가 나빠도 계속 돈을 꿔주어서 기업이 도태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실채권 해소가 금융정상화의 전제조건이고 금융정상화는 기업의 진입·퇴출을 용이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음을 기억하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소유분산을 꾀하는 채권·주식전환을 경제민주화에도 어긋날 수 있다. 경제민주화는 경제적 힘의 분산이 요체이다. 그러나 은행이 기업주식을 소유하면 결국 은행이 기업을 또는 기업이 은행을 흡수하여 커다란 힘을 행사할 것이다. 단순히 큰 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크면 힘을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쓸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민주화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부실채권 문제는 빨리 국민적 합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나는 채권 주식전환은 부작용이 너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서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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