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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사정바람” 숨죽인 정치권/박·엄씨 수뢰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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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사정바람” 숨죽인 정치권/박·엄씨 수뢰 파장

입력
1993.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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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똥 어디로…” 구 여권등 불안감/「대선자금」 문제로 확산 우려도국민당 박철언의원과 엄삼탁 병무청장에 대한 검찰의 소환조사 착수는 또다시 정치권을 긴장시키고 있다. 임시국회동안 의정활동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을 뒷전으로 밀어냈던 슬롯머신사건과 동화은행사건 수사가 드디어 정치권에서 손을 뻗치기 시작한 것이다.

사정당국의 공식적 부인에도 불구하고 오는 20일 임시국회가 끝나면 국회의원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갈 것이라고 예견했던 정치권은 박 의원 등에 대한 소환수사 방침이 알려지자 『결국 터졌구나』며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다.

여야 의원들은 박 의원의 경우 신호탄에 불과하고 재산공개 파문에 이어 정치권에 대한 「제2의 숙정」이 닥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각종 비리사건과 관련,사법처리설의 대상으로 거명돼왔던 의원들이 대부분 세칭 6공 실세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라는 점으로 인해 향후 사정바람이 「과거청산」이라는 방향으로 불어갈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 때문에 구 여권 인사들이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며 사태추이를 지켜보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도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며 안심하지 못하고 있다.

박 의원과 엄 청장의 소환수사를 지켜보는 정치권이 제일먼저 가진 느낌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사정의 강도가 높다는 점이다. 박 의원이 3당 합당이후 줄곧 김영삼대통령과 정치적으로는 반대편에 서 왔으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친인척으론 첫번째로 사법처리 대상에 올랐다. 비록 박 의원이 노 전 대통령과는 서먹서먹한 사이가 됐다고는 하지만 전직 대통령의 친인척을 구속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박 의원에 대한 수사는 사정의 명분이 어떻든간에 정치보복이란 인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적지않은 부담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같은 사정은 엄 청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엄 청장은 군재직시절부터 노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일해왔고 안기부 기조실장 때는 「청와대의 집사」라고 불릴 만큼 노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인물이다. 또한 지난 대선 때는 안기부내에서 드러내놓고 「YS지지」를 밝히면서 조직이나 자금의 측면에서 김 대통령을 지원한 공신이어서 병무청장으로 발탁되기까지 했다.

김 대통령이 미워하든 좋아하든 사법처리에 수반되는 부담을 마다하고 두사람을 사정의 대상에 올렸다는 것은 그 만큼 사정의 칼날이 시퍼렇다는 것이고 그래서 더욱 정치권을 움츠리게 하고 있다.

때문에 동화은행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알려졌고 18일 상오 신병치료 명분으로 일본으로 출국한 이원조의원 등의 경우도 일단 검찰 수사과정에서 증거가 확보되기만 하면 6공과의 관계나 대선에서의 공로 등 일체의 정치적 고려는 없을 것이라는게 대체적 생각이다.

민자당의 황명수 사무총장도 이같은 정치권의 동요를 의식한듯 『내가 알기로는 현재까지 여야 의원을 통틀어 사법처리 대상은 한사람 밖에 없다』고 말했지만 앞으로의 정치인 연루가능성에 대해서는 말꼬리를 흐렸다. 사정바람이 박 의원을 끝으로 해 정치권을 비켜갈 것으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슬롯머신사건만해도 정덕진씨 형제들이 5·6공 시절 권력의 핵심부에 있었던 세칭 「공안세력」과 줄을 댔다는 얘기가 있어 또다른 관련인사가 나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동화은행사건도 6공 시절 경제계에 영향력을 미쳤던 인사들과 이북출신 고위공직자들이 연루됐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박 의원이 현재 국민당 소속이기는 하나 민자당내 민정계와 뿌리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의 소환수사를 지켜보는 민자당의 속마음도 복잡하다. 특히 민정계 인사들은 정치보복이란 인상을 떨치지 못하면서 못마땅해 하는 분위기다.

한 민정계 의원은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문제 삼는다면 안걸릴 의원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며 『괘씸죄가 있다고 이런 식으로 일을 하면 나중에 큰 후유증이 생긴다』고 우려했다. 민주계 인사들도 『유리알 같이 맑은 세상에 어떻게 수사방향을 정해놓고 누가 정치보복으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박 의원의 사법처리를 오래전부터 당연시해왔던 터이다.

이와함께 당내 일각에서는 슬롯머신사건이 자칫 대선과정의 선거자금 제공으로 이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파문을 일으키게 될 것을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박 의원이 87년 대선서 노 전 대통령의 사조직을 관리했다면 엄 청장이 지난 대선에서 김 대통령을 적극 지원했다는 점에서 구설수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도 『우리 당에는 관련인사가 없다』며 애써 강건너 불보듯한 표정을 짓고 있으나 속으로는 바짝 숨을 죽이고 있다. 잇단 비리사건이 기본적으로 구 여권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선뜻 공식 논평을 하지 못하고 수사결과를 관망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슬롯머신업계의 정치적 비호세력이 돼줄만한 힘은 없었겠지만 슬롯머신업계과 손을 잡은 주먹조직과의 관계에서 「검은 돈」이 흘러들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신재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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