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길 양쪽 차선에 전경버스들이 늘어섰다. 오랜만에 등장한 그 버스들을 보는 마음이 답답한 것은 봄비가 여름 소나기처럼 퍼붓는 월요일 아침 출근길이 더 더디고 불편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답답하기로야 연희동 길 양쪽에 사저를 둔 두 전임 대통령이나 저들 버스안에서 대기중인 전경들의 심신만한 것이 또 있겠는가.좁은 길을 꽉 메운 차량의 정체보다 더 속상하게 하는 답답함은 5월이라는 우리 시대의 병목에 걸린 역사의 삽체다. 길이 정체되는 것은 시간이 걸릴 뿐이지 아주 막히는 일은 없다. 그러나 역사의 삽체에는 시간의 기약이 통하지 않는다. 정말 답답하다.
해마다 이맘때면 이 길에는 최루가스 냄새가 흘러들었다. 전임 대통령의 사저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대학들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에는 최루가스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럴 일이 없을만큼 문민정부의 개혁이 잘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90 몇%의 지지를 받는 정부 아래라면 지지시위 아닌 시위는 상상하지 않는 편이 옳지 않겠는가.
그러나 꼭 그런 것만도 아니어서 연희동에 전경버스들이 등장한 아침에 김영삼대통령은 내각·수석비서관 연석 조찬간담회를 열고 「시위」에 대해 언급해야 했다. 김 대통령은 『5·18 기념일을 전후해서 자유로운 시위문화가 이루어지도록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고 시위자들을 보호토록 함으로써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도록 하라』고 당부한 것이다. 『지금 광주시민의 85%가 개혁과 변화를 지지하고 있다』는 자신감도 같은 자리에서 피력됐다.
바리케이드도 시위대도 없이 엄청난 혁명적 사태가 진행된다고 해서 이탈리아의 부패척결운동은 「포스트 모던적 혁명」이라고 일컬어진다. 루마니아의 유혈혁명과 대조적인 체코의 그것을 벨벳혁명이라고 불렀던 것은 이미 몇해전 일이다. 1천3백명 이상을 구속하고 1천2백명 이상을 수사중이며 7회나 총리를 역임한 가장 유명한 정치인이 마피아의 비호세력이었음을 밝혀내는 등 거칠 것 없이 잘 나가는 이탈리의 「깨끗한 손」 작전이 별다른 저항 없이도 가능한 것은 오직 여론과 언론의 강력한 지지 때문이다. 조사가 진행되면서 자살한 정치인이 8명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토사구팽」이나 「격화소양」식 정치적 변설이 고작인 우리 형편과 비교가 된다. 프랑스에서는 총선에서 참패함으로써 물러난 총리가 자살을 택하고 있다. 스캔들 탓이라기 보다는 서구의 사회주의 정당들의 도덕적·정체적 위기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개혁은 이제 겨우 시작의 시작일 뿐이다. 우리 모두가 살아온 당대사에 대해 새롭게 조명하고 정의하는 일은 당연한 책무이며 절차의례이기도 하다. 12·12에 대한 역사적 해석,특히 그에 이은 5·18문제에 대한 평가와 「해법」을 동시에 제시한 것 역시 김영삼정부의 시대적 소명에 속하는 일이다. 『5·18의 연장선상에 새로운 문민정부가 있다』고 한 것은 그런 점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의 명예회복을 가장 확실하게 다짐한 것이다. 5·18만이 아니라 적어도 4·19와 6·10까지를 문민정부와 같은 지평위에 놓는다해도 무방할 것이다.
문제는 『역사에 맡기자』고 하는 진상규명일 것이다. 진상 자체에 앞서,『역사에 맡기자』고 하는 발상과 선택부터가 문제라는 생각이다.
김 대통령은 오랫동안 많은 생각과 고뇌끝에 내린 결단임을 강조하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과 그 자신과의 관계,그가 겪은 고통과 동참과 투쟁을 들어 자신의 선택을 받아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의 선택은 정치적인 것이다. 할 일 많고 앞길 바쁜 문민정부가 지나간 일에 발목을 붙잡혀서 제자리에 멈출 수는 없지 않느냐는 「충정」을 담고 있다. 지금 진상을 다 드러내는 과정에서 사회에 새로운 갈등을 심는 것보다는 훗날의 역사에 맡기자는,다분히 도피적이고 정서적인 차원의 호소다.
「후세의 역사에 맡기자」는 말로 당대사에 대한 평가와 판단을 미루는 태도는 국민으로 하여금 멍청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는 강요와 다를 것이 없다. 「뒷날 언젠가 알게될 때」를 위해 오늘 참고 용서하고 화해하자는 뜻을 역사의 당사자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5·18 광주의 어제의 진상과 오늘의 의미가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라해도 아주 모를 것은 또한 아니다. 알만한데도 덮자니까 더욱 힘들다. 역사로서의 진실규명을 후세로 넘기는 것은 책임있는 태도도 아니다. 당대에서 포기되고 지체된 진실규명과 현실판단이 과연 후세에 올바른 역사로 남게 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문민정부의 출범도 이제 80여일을 헤아린다. 진상규명을 포함해서 「역사」를 말하게 되는 중요한 조치들에서 「대통령 혼자서 가는 혁명」의 느낌을 받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지지율은 물론 중요하지만,그래서 여론과 함께 있다는 자각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그래도 진실과 역사의 편에 선다는 자세는 버릴 수 없는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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