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원로로서 80년 광주사태때 실형을 언도받고 3년후 복권됐던 홍남순변호사(81)는 15일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광주사람들도 이제 너무 광주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호남의 울타리를 넘어 넓은 세계를 봐야 합니다. 국민의 일원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스스로 돌아볼 것은 돌아보고,용서할 것은 용서해야 합니다…』
5·18 13주년을 맞은 광주에서는 올해도 부분적으로 최루탄이 터졌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이 경찰과 대치하여 투석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며칠째 기념행사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의 얼굴은 지난해와 달랐다.
광주사태 자체가 굳게 밀봉돼 있던 시절의 처절한 몸부림,광주사태에 관한 5공 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광주를 짓누르던 냉소와 침묵,최루탄속에 흠뻑 울며 응어리진 한을 발산하던 5·18은 이제 역사속에 묻힌 것 같다. 올해 광주의 5·18 행사를 보도하는 신문사진과 TV 화면에는 밝은 얼굴들이 가득차 있다. 망월동 묘지를 참배하는 사람들의 슬픈 얼굴조차 어둡지는 않다.
광주시민들은 이제 비로소 「광주인」이 아닌 「한국인」의 정서로 5·18을 볼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광주사람들은 자신이 호남인일뿐 아니라 국민의 일원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홍 변호사의 말은 이미 받아들여지고 있다. 억눌린채 고여있던 광주의 통한은 이제 통풍이 되고 있다.
지난 13년동안 많은 사람들은 누구에게 고향을 묻다가 『광주입니다』라고 대답이 나오면 순간적으로 긴장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때 거기 있었습니까?』라고 묻고 싶어도 대부분 묻지 않았고,광주사람들 역시 그런 질문에 길게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다른지방 사람들은 진실을 듣는 것을 두려워했고,광주시민들은 아무도 진실을 믿지 않을까봐 두려워했다. 「그때 거기 있었던」 사람들과 그 밖의 사람들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지난 13일 발표한 김영삼대통령의 「5·18 특별담화」는 그 강물을 일시에 메웠다. 다른지방 사람들이 광주사태에 대해 품고 있던 막연한 의혹과 죄의식도 사라졌다. 『광주의 유혈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되었으며,광주의 고통을 온국민이 함께 나누면서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리겠다』는 대통령의 선언은 광주를 묶었던 이중의 멍에를 풀었다.
정부는 광주의 복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들을 서두르고 있다. 5·18 항쟁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4백23명,연행 및 구금을 당했던 2천2백여명에 대해서도 보상법을 찾고,망월동 묘지의 성역화 등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광주는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참담하게 짓밟혀 소외되고,편견으로 소외됐던 단절된 땅이 아니다. 광주의 5월이 더 이상 서러운 5월이어서는 안된다. 「광주인」들이 「한국인」의 눈으로 5·18을 보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상규명 등 남아있는 문제의 해결에서 모든 국민이 먼저 광주인의 심장을 가져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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