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저녁 갑자기 김영삼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특별담화를 발표할 때부터 왜 이렇게 서두르는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같은날 상오에 이미 12·12사태에 대한 김 대통령의 정의가 청와대 대변인의 입을 통해 발표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12·12에 대한 시비의 불을 한시 바삐 끄기 위해 그러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던게 사실이다.그러나 아무리 그렇다손치더라도 역사적으로 큰 사건인 두가지 사태에 대해 청와대가 상하오로 나누어 두번씩이나 국민앞에 나설만한 긴급한 상황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설사 꼭 필요하고 또 하루 빨리 대통령 담화를 발표하고 싶다면 다음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5·18이 있는 다음주로 넘겨서 하면 더욱 시의적절할 것이었다. 사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는 광주시민의 감정도 헤아려보고 각종 상황을 지켜본뒤 발표해도 결코 늦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갑작스레 발표함으로써 국민과 광주시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담화에 담긴 김 대통령의 고뇌와 충정은 얼마든지 이해하면서도 진상규명을 역사에 맡긴다는 대목은 결국 광주시민과 피해자들에게는 섭섭하게 들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또 야당에게도 대여 공격의 호재를 제공한 셈이 되고 말았다.
6공 청문회를 반대한다는 김 대통령의 견해도 그같은 맥락에서 너무 일찍 나온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 문제는 김 대통령이 자진해서 스스로 발표한 것이 아니고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나왔지만 정부·여당의 최종방침으로는 문제의 성격과 시기에 있어서 성급하게 제기되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물론 6공 청문회는 야당에서 일찍부터 주장해온 정치공세였지만 아직 여야간에 정식 협상조차도 시작 안된 문제가 아닌가.
12·12나 5·18에 대한 재평가처리처럼 정치보복을 하지 않고 과거를 묻지 않겠다는 공약에 따라 아예 6공 청문회나 관계특위 구성까지 안하겠다고 원천봉쇄를 해버린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야가 있고 국회가 있는 현실에서 6공 비리조사조차 청와대가 나서 원천봉쇄 선언을 해버리면 정치절충이나 대화의 여지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되는가. 과거와 같은 여야간의 강경대립으로 정국이 치달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12·12사태에 대해서는 청와대의 솔직한 해석을 야당이 받아들여 여야간에 정치적으로는 넘어간 셈이지만 5·18과 6공 청문회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정면에 급히 나서는 바람에 여야간의 첨예한 쟁점으로 뚜렷이 떠오르고 말았다. 언제 부상되든 시간문제라고 할지 모르나 취임백일도 아직 멀었는데 정치싸움을 너무빨리 시작한다는 인상을 준다. 지금 진행중인 개혁일정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고 여야간의 지나친 마찰은 결국 정쟁으로 확대되어 여기에 시간과 정력을 쏟다보면 미래를 향한 개혁은 언제 손댈 것인가.
새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90몇%까지 올라간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너무 자만해서,지나친 자신감에서 신중함을 잃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나오고 있음을 유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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