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국립묘지/정병주씨 비문없는 무자비만…5·16쿠데타 32돌인 16일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묘지는 역사의 격랑이 빚어낸 명암이 여느때보다 뚜렷이 교차되고 있었다.
이날 박정희대통령 묘소와 전몰군경묘역에는 5·16 민족중흥회 회원 1백여명,6·25 전몰군경 유자녀 회원 2백여명 등 참배객들이 찾아 분향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12·12사태때 한남동 육군참모총장공관과 국방부에서 벌어진 총격전에서 희생된 사병2명과 총상을 입고 강제퇴역당해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 89년 자살한 당시 특전사령관 정병주소장,정 소장을 체포하러온 신군부측의 총탄에 숨진 김오랑소령 등은 문민정부의 12·12에 대한 새 평가를 아는지 모르는지 말없이 잠들어 있다.
국립묘지 장군 제1묘역의 정병주소장의 묘는 「덕장」 「지장」 「맹장」 등 미사여구가 새겨진 다른 장군들 묘비와는 달리 비문이없는 무자비만이 외롭게 지키고 있다.
신군부측 장교에 의해 하반신에 집중적인 총상을 입고 숨진 김오랑소령의 묘앞에는 신라시대 랑도 득오가 화랑 죽지를 사모해 지은 향가 「모죽지랑가」를 새긴 조그만 패가 놓여있다.
「쿠데타적사건」의 승리자가 집권하는 동안 미처 기다릴 수 없었던 김 소령의 충정을 비유 한듯 모죽지랑가를 담은 이 패는 84년 12월12일 어떤 인연의 사이인지를 알수없는 배정환씨가 세운 것. 그래도 이 패로 인해 김 소령의 묘소는 정 소장의 묘보다는 덜 쓸쓸해 보인다.
서쪽 23묘역에는 당시 국방부 헌병대 소속으로 국방부기습 작전을 전개하던 신군부의 3공수여단에 맞섰던 정선엽병장과 한남동 총장공관 총격전에서 신군부가 동원한 육군 33헌병대 소속이었던 박윤관상병이 그때는 총을 서로 겨누었던 「적」이었지만 지금은 단지 10여m 떨어져 구원을 잊은듯 묻혀있다.<이진동기자>이진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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