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대공정보업무에 전념/국방위/방송계 인사 정부간여 없어/문공위▷국방위◁
『안기부가 변하고 있다』
14일 안기부를 상대로 대정부 질의를 벌인 국회 국방위는 이 가설의 실험장이었다. 아울러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안기부의 모토 역시 검증의 대상이었다.
이 가설의 진위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었지만,변화의 증거들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우선 외형적인 변화가 두드러졌다. 과거 안기부 보고가 있을 때면,국방위 회의실문에는 어김없이 「비공개 회의중」이라는 음습한 팻말이 걸려 있었다. 이날 회의에서는 이 팻말이 사라졌다. 철칙처럼 굳어져 있던 비공개 회의가 일부 공개로 전환된 것이다.
안기부장의 인사말도 보도자료로 만들어져 배포됐다. 자료를 나눠주는 안기부 공보관의 모습도 신선했다.
무엇보다 김덕 안기부장의 행보가 변화의 조류위에 서 있었다. 그는 상임위 시작 30분전에 국회에 도착했다. 그리고 국회의장실을 방문,이만섭의장에게 인사를 했다. 덕담도 오갔다. 국회 관계자들은 『김 부장의 언행에서 겸손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평했다. 국회 위상을 존중하려는 성의가 진하게 묻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인사말에도 변화는 강조되고 있었다.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다짐도 있었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함으로써 국민신뢰속에서 중추 정보기관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포부도 언급됐다.
업무보고에도 색다른 방식이 도입됐다. 상오 11시15분부터 30분간 계속된 국제정세에 대한 공개보고는 슬라이드까지 동원됐다. 이어 「북한정세」 「유연 경제제재의 대북 영향」 보고는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이의 제기는 없었다. 안기부의 「성의」에 야당 의원들도 만족한듯 했다.
외형은 분명 변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기부의 「내용」이 변하고 있는지는 속단할 수 없다. 의원들의 질의도 정치사찰 중단 등 실질적인 변화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정대철의원(민주)은 『외형상의 변화도 중요하지만,참회를 통한 과거 청산이 필요하다』며 『안기부가 국회에서 과거 행적을 사과할 용의는 없는가』라고 물었다.
나병선의원(민주)은 『안기부 하면 으스스한 분위기가 연상된다』면서 『이같은 국민인식을 바꾸려면 국회에서 안기부 예산부터 심의할 수 있도록 국회에 정보위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복진의원(민주) 역시 『안기부의 수사권을 경찰·검찰에 환원시켜야 한다』면서 『안기부는 해외정보,대공정보의 수집에 전력하는 정보기관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서수종의원(민자)은 이와는 달리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이 불변인 상황에서 국내의 사상적 동태를 살피지 않아도 되느냐』고 물었다.
의원들의 질의는 비단 안기부의 변화나 개혁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었다. NPT 문제,대러시아 관계,간첩단사건 등 다양한 문제가 거론됐다. 다양한 쟁점,각양각색의 질의가 넘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변화의 증거였다.<이영성기자>이영성기자>
▷문공위◁
문공위는 14일 공보처로부터 현황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언론과 정부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문민시대 김영삼정부의 대언론관이 공개토론의 장에 올려진 것이다.
야당 의원들은 특히 방송과 정부의 관계,즉 KBS와 MBC 양방송사에 대한 정부간섭 문제를 따졌다.
의원들은 오인환 공보처장관의 답변태도를 『솔직하고 진지하다』고 일단 높게 평가하면서도 『새정부의 언론관이 과연 정권과 얼마나 다르냐』며 방송에 대한 정부 영향력의 최소화를 요구했다.
학술토론회를 방불케 할 정도로 자못 진지했던 이날 국회와 정부의 공방에서는 야당이 새정부에 품고 있는 일말의 의구심과,문민정부 나름대로의 고민이 동시에 표출되었다.
논란은 이날 상오 오 장관의 답변내용에 박계동의원(민주)이 이의를 제기하면서부터 시작됐다.
MBC 인사문제와 관련한 답변도중 오 장관은 『MBC를 MBC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인사에 전혀 간여하지 않았다』면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과 사장후보들의 평판에 관해 대화를 나눈 사실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결과 어느 때보다 훌륭한 인사가 이뤄졌다는게 오 장관의 주장이었다.
곧바로 박계동의원의 지적이 나왔다. 『MBC 주식소유 재단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에게 사장후보들의 인물평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무언의 압력 아닌가』라는 요지였다. 모든 권력은 인사권에서 나온다는 일반론이 곁들여졌다.
임채정의원(민주)이 거들었다. 임 의원은 우선 『오 장관의 답변태도가 솔직하고 진지한 것은 진전된 행정부의 모습으로 긍정 평가한다』고 인정하면서도 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임 의원은 『정부는 일부 언론에 대해 여전히 법적·경제적 통제가 가능할 뿐더러 특히 행정적인 수단이 서슬퍼렇게 살아있지 않느냐』며 『문민정부가 기대만큼 올바로 해나가는지는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임 의원은 특히 전파매체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을 경계했다.
이에 대한 오 장관의 답변은 새정부의 공통된 고민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오 장관은 『문민정부의 공보처장관으로서 정부내에 축적된 경험이 없어 두렵기까지 하다』고 답변을 시작했다.
오 장관은 『과거 정부가 지금과 같은 시도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방향을 잡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고충을 털어놓은뒤 『최선의 방법을 고심중』이라고 말했다.
방송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정부가 「대화」마저 포기하는 직무유기를 할 수도 없고,그렇다고 간섭으로 비쳐지는 행동을 할 수도 없는 난감한 처지라는 얘기였다. 『민주당이 정권창출을 했어도 똑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여졌다.
솔직한 심경토로에 의원들은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채영석의원(민주)은 『장관의 고민에 이해가 간다』고 말한뒤 『문제는 그러한 「대화」라도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냐 줄어들 것이냐 하는데 있다』며 방송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 배제를 거듭 촉구했다.
오 장관은 『지금은 정권초기라서 방송이 잘못될 경우 대통령의 개혁프로그램에 차질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대화를 하는 것』이라며 『앞으로는 그것도 없어질 것』이라고 답변했다.<정광철기자>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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