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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용서」(장명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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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용서」(장명수칼럼)

입력
1993.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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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대통령은 12·12와 5·18에 대한 확고한 대처로 자신과 연결된 민자당의 마지막 태줄을 끊었다. 그의 개혁드라이브는 부패척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역사의 재평가라는 핵심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87년 대통령선거운동에서 『12·12는 명백한 쿠데타』라고 공격하던 그가 12·12의 산물인 민정당과 90년 1월 합당했을 때 경악했던 사람들은 요즘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로 들어갔다』는 합당론에 설득당하고 있다. 그는 취임 79일만인 지난 13일 잇달아 발표한 「12·12사태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과 「5·18 13주년 특별담화」를 통해 자신이 「민자당의 아들」이 아님을 만천하에 선언했다.

그는 이날 『분명히 말하거니와 오늘의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위에 서있는 민주정부』라고 강조했고,『12·12사태는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인 사건이며,이제 우리는 비로소 그 불행했던 역사를 청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특별담화는 광주시민들의 마음을 새롭게 흔들기에 충분했다. 김영삼이란 존재는 광주시민들에게 「완전한 동지도,완전한 적도 아닌」 착잡한 존재였다. 국내 언론의 침묵속에 광주사태가 진행되던 80년 5월 김영삼씨는 외신기자와의 회견에서 국내 인사로는 처음으로 광주사태를 세계에 알렸고,연금중이던 83년 23일간의 단식을 시작한 것도 광주사태 3주년을 맞던 날이었다. 그는 단식에 앞선 선언문에서 『나의 단식은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민들이 광주에서 희생당하기에 이른 사태에 대한 자책과 참회의 뜻이며,목숨을 잃은 영혼과 그 가족들의 고통에 동참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광주시민들이 보는 김영삼씨는 늘 「김대중씨의 경쟁자」였고,3당 합당후에는 「광주사태의 책임자들과 손잡은 배신자」였다. 김영삼씨와 광주시민들 사이에는 항상 긴장과 갈등이 있었다. 광주시민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은 김영삼씨가 대통령이 되어 과감하게 개혁을 추진하면서 부터였다. 야당 사람들조차 『이제 광주는 더이상 야당의 아성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걱정할 만큼 광주의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

김 대통령의 5·18 담화는 광주시민들과 김영삼씨의 관계가 이미 착잡한 갈등관계에서 벗어났음을 전해준다. 그 담화속에는 민주화를 위해 함께 투쟁하고 함께 고통받은 이들 사이의 떳떳한 동지애가 스며있다. 그러나 그 동지애를 바탕으로 한다해도 『진상규명을 훗날 역사에 맡기자』는 대통령의 호소를 광주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 다같이 잊지는 말되 과감하게 용서하자. 용서하는 만큼 큰 용기는 없다』는 영웅적인 말이 광주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대통령의 담화는 광주시민들이 온국민앞에 비로소 마음을 열고 통곡할 수 있게 할 만큼 절절하다. 그러나 진상을 덮어두고 용서하자는 호소는 무리다. 대통령의 담화는 광주대책의 완결이 아니고,또다른 시작을 예고하고 있다. 이제 광주문제의 해결은 온국민이 함께 고민하면서 진실과 용서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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