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문제와 관련한 결의안을 채택한 11일의 안보리 회의장 광경은 현장을 취재한 기자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 이유는 달라진 세계와 달라지지 않은 한반도 상황이 짧은시간동안 너무나 대조적으로 극명히 부각되었기 때문이다.결의안은 북한에 대한 안보리의 경고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결의안 표결에서 러시아 대표가 손을 번쩍 들어 찬성하고 중국 대표가 기권했다. 매일 취재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입장이 당연하게 느껴지다가 막상 표결 광경을 보고는 세상이 바뀌어도 보통 바뀐게 아니구나 하는 놀라움을 느끼게 됐다.
러시아와 중국이 어떤 나라들인가. 바로 몇년전만해도 북한의 동맹국들이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치관계로 북한을 두둔해왔던 중국이 결의안 통과가 가능하도록 기권하는 모습은 보도석에 앉은 기자의 머리를 한참 어지럽혔다.
그런 반면 이날 남한의 유종하,북한의 박길연대사가 안보리 회의장에 마주 앉아 상대를 비난하는 모습과 또 북한의 박 대사가 「자위조치」를 역설하며 미국을 맹렬히 비난하고 이에 올브라이트 미국 대사가 반박하는 설전을 벌이는 광경에서 한반도의 냉전이 엄연히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난 91년 안보리에서 유엔 동시가입이 만장일치로 통과되고 남북 대표가 악수하던 모습을 떠올려 볼때 세상이 달라지기는 커녕 더욱 대결과 반목의 분위기로 치달리는 것을 보게 된다.
달라지는 세계에서 달라지지 않는 한반도를 보며 떠오르는 상념은 북한 핵문제가 앞으로도 곡절을 많이 겪겠다는 생각이다. 과연 북한 외교부나 지도부에 안보리의 분위기와 국제여론이 정확히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만약 북한이 한국의 정보관계자들의 말처럼 극도로 경직된 사회라면 김일성·김정일부자의 의사결정은 제한적인 정보에 의존할 것이다.
이런 가정을 해본다면 북한 핵문제는 넘어야할 고비가 높고 험하다는 우려를 쉽게 버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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