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스승의 날」이다. 선생님을 존경하고 노고에 감사하기 위해 지난 83년 제정된후,연례행사로 해온지 12번째가 되는 날이다. 선생님들에게는 더없이 뜻깊고 보람찬 그런 날이다.그러나 초·중·고교의 교사든 대학의 교수든 교직에 몸담고 있는 이 사회의 모든 선생님들에게는 내일 「스승의 날」이 그렇지가 못할 것 같아 안타깝다.
후기대학 입시직후부터 터져나온 사립대학들의 입학부정이 꼬리를 물고 있다. 지난 5∼6년 사이에 사학들이 저지른 엄청난 규모의 부정입학 실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내로라하는 교수들마저도 자녀를 특례입학시킨 부도덕성이 밝혀지고 있다. 국립대학의 입학부정사례도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교감과 고등학교 교감까지 지낸 장학사와 장학관이 국립교육평가원의 학력고사 문제의 정답을 도둑질하는 범죄까지 자행한 판국이다. 각급 학교의 「돈봉투」 문제에 대한 얘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교육에 대한 불신감이 그 어느 때보다 심화돼 있다. 40만 교직자들의 양심의 무참히 짓밟힌 불행한 시점에서 맞이하는 「스승의 날」이다. 보람과 긍지를 느끼기보다 참담하고도 자괴하는 마음으로 이날을 맞게 될 것 같다.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땅의 병든 교육풍토의 원인을 따지기로 한다면야 그게 어디 「교직자들만의 탓」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 교육의 발아기에 동족상잔인 「6·25전쟁」으로 50년대는 전후처리에 골몰했고,60년대는 경제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야 했으며,70년대는 경제발전이 몰아온 가치관의 혼돈의 휩싸였으며,80년대는 민주화의 진통으로 교육 또한 좌절을 겪어야 했다.
시대상황에 휘말린 교육과 교육계는 어쩔 수 없는 「사회속의 교육」으로서 사회와 함께 부패도 해야했으며 뒷걸음질도 쳐야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교육은 자라나는 2세들에게 자주적·창의적·도덕적·협동적인 자질과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본질서에 이탈되고 왜곡돼야 했던 것이다. 초·중등교육은 학부모들의 과욕이나 입시준비에 급급해 창의성 개발이나 인간교육을 할 겨를이 없었다.
입시경쟁은 지옥처럼 가혹했지만 「입학=졸업」으로 이어지는 대학교육의 질은 형편없이 떨어져갔건마는 그래도 대학만 가면 된다는 식이어서 입학부정이 만연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같은 우리 교육의 중병은 정치나 경제 등 다른 분야의 부정·부패·부조리와 마찬가지로 개인차원의 논리나 도덕의식 마비와 더불어 사회구조적인 모순에서 기인됐다고 봐야 한다. 때문에 오늘날 우리 교육과 교육계가 앓고 있는 병은 부분적인 것이 아니고 전면적인 것이며,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고질적인 것이라는데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교육 중병을 어떻게 고쳐야 할 것인가. 교육은 결코 초·중·고교나 대학만의 일일 수는 없다. 교사나 교수들만의 책임으로 돌리고 매도한다해서 치유될 병이 아니다. 가난한 학교와 재정난의 위기에 처한 대학들에게,그리고 힘없는 「교육자들에게만」 교육을 맡겨버린채 아무리 그 잘못과 책임을 따져 봤자 교육은 개선될 수가 없다. 본질적인 교육개혁을 기대한다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교육은 사회전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 학교의 교육여건을 개선해주고,교육자들에 대한 보다 나은 처우와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사회적 풍토를 만들어주는 일은 사회전체가 맡아야 한다. 그렇다고 교사와 교수들에게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교육의 핵심주체로서 교사와 교수들이 책임을 다할 각오를 각별히 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교육과 교육자가 상처투성이가 된 때에 맞는 「스승의 날」에 우리 모두가 교육을 바로 세우는 일에 일익을 다할 각오를 새로이 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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