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없는 교육권 “가르칠맛 안난다”/인사제도업무봉급등도 열악한 상태/“이젠 스승아닌 지식장사꾼” 자조까지열악한 근무환경과 과다한 업무,교육의 전문성과 자율성 상실 등으로 고교 교사들의 사기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고 할만큼 학교교육에서 교사는 가장 핵심이 되는 주체이다. 따라서 교사의 교육주체로서의 권리는 「신성한 교권」으로 보호받아야 하며 그것은 교직의 특수한 책임성과 자율성을 본질로 한다.
그러나 한국의 고교교사들은 교과과정의 편성·진도조정·수업방식 등 교육과정의 운용에서부터 작게는 실무적 의사결정에 이르기까지 교육부를 정점으로 한 관료조직의 전면적인 통제를 받아 전문성과 자율성을 가진 주체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수업시간 수와 낮은 처우,부적절한 근무여건,불합리한 인사제도,갈수록 낮아지는 사회적 지위로 교사들의 사기는 이미 땅에 떨어진지 오래다.
지난해 전교조와 교육전문지 「우리교육」이 전국의 초중고교사 1천4백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사 의식조사」 결과 교직생활에 만족한다는 교사는 52.7%에 불과했다. 이중 교직경력 5∼10년인 교사는 49.4%가 만족한다고 응답한데 비해 15∼20년의 경우 47.8%가 만족한다고 해 오래 근무한 교사들일수록 불만과 실망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대해 「상」이라고 응답한 교사는 1%에 불과했고 94.2%가 「중」이하로 평가,교직자체에는 어느 정도 만족하면서도 사회경제적인 잣대로는 상대적인 열등감과 불만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 동료교사들의 근무의욕에 대해 「매우 높다」는 5.1%,「보통」 57.2%,「약간 낮다」 14.9%,「매우 낮다」 2.8%로 사기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학생들 존경심 사라져
「92한국의 교육지표」(한국교육개발원)에는 고교교사들이 처한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자료에 의하면 92년 현재 우리나라 고교교사는 9만6천3백42명으로 교사 1인당 학생수는 22.1명이다. 이같은 수치는 미국의 14명에 비해 두배 가까이나 되며 프랑스 14.2명,일본 17.1명에 비해서도 높아 부담이 큼을 말해준다.
교사들의 평균연령은 인문계 고교가 38.3세,실업계고교가 38.2세이며 장기근속 교사들을 근무기간별로 보면 20∼30년 16%,30∼40년 0.5%로 타직종에 비해 도중에 교단을 떠나는 교사가 많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교사들의 초임은 40만6천5백원. 기업체 신입사원의 평균 44만7천원보다 4만5백원이 적으나 10년 경력자는 55만8천원으로 기업체사원 94만3천원(91년 기준)과 현격한 차이가 난다.
현행 교육과정 시간배당 기준과 법정 교원수에 의해 산출된 고교교사의 주당 평균 수업시간수는 14.2시간이다. 그러나 일선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이 실제로 맡고있는 수업시간은 이보다 훨씬 많다. 사립학교 대부분이 법정 교원수를 채우지 않고 국공립의 경우에는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 명목으로 수업을 맡기기 때문이다.
이같이 기본적인 근무여건이 열악한데다 각종 잡무처리,교육당국의 권위적인 지시,사립재단의 횡포,학부모들의 고압적인 태도 등으로 교사들의 교육자로서의 긍지는 위축될대로 위축돼있다.
서울 D상고 교사들은 매주 39∼40시간 수업을 한다. 정규수업 23∼24시간외에 보충수업 4시간,자율학습 10시간,특별활동 2시간을 맡고있다. 그러나 91년까지만해도 수업초과 수당이 전혀 지급되지 않았고 지난해부터 초과시간당 2천원씩만을 받고있다.
교장은 교실을 순시하면서 책상이나 의자 등 비품이 파손된 것이 있으면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교사들을 호되게 추궁한다. 교사휴게실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당직교사는 하루에도 서너차례씩 학교를 돌며 시설물의 파손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교사로서의 최소한의 체면조차 지킬 수 없고 학생들의 교사에 대한 존경심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군사부일체」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들은 이미 교육현장에선 사라진지 오래다. 교사도 학생도 학부모도 이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열악한 환경에서 허덕이는 많은 교사들은 스스로를 학생들의 인격을 형성하는 참된 스승이라기보다 지식을 파는 장사꾼으로 자조한다. 서울 M고의 이모교사(31)는 『입시위주의 획일적인 교육에서 탈피하기 위해 독자적인 수업방식을 도입하고 싶어도 학교와 학부모의 눈치가 보여 어쩔 수 없다』며 『이 때문에 교사들 사이에서는 대충대충 하자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고 실토했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맹목적 이기적인 교육열로 교사에게 촌지여부를 건네는 그들에게 교사는 단순히 대입시에서 점수를 올리는데 필요한 과외선생 정도에 불과하다. 교사에게 자식의 장래를 맡긴다는 의식은 아예 없는 것이다.
더욱이 대입시부정에 현직 고교교사가 브로커로 개입돼있는 등 최근들어 잇달아 터지고 있는 교육계 비리로 한층 따가워진 학부모와 학생들의 시선은 묵묵히 최선을 다해온 많은 교사들의 의욕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
때문에 많은 일선교사들은 대외적으로 자신들의 소리를 대변해 줄 창구가 없다는데 가장 큰 불만을 느낀다. 어려운 여건속에서 외롭게 분투하고 있는데도 일방적으로 매도만 당할뿐 한마디 변명이나 입장표명을 제대로 해줄 기구나 방법이 변변치 않다는 것이다.
지난 2월 교육전문지 「우리교육」이 전국의 초중고교사 1천2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이같은 불만이 잘 나타나 있다.
○처우개선에 노력해야
조사결과 교총의 교권옹호,교육정책개발,교원 처우개선,교육여건 개선활동에 대해 60%가 「불만」이라고 응답했고 「만족」이라고 답한 교사는 5% 뿐이었다.
전교조에 대해서도 교권옹호 활동에만 50%가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었을뿐이고 교육정책이나 교원 처우개선 교육여건 개선에는 60% 가량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교원단체가 우선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분야는 교육여건 개선 30.6%,교원 처우개선 30.1%,교권 옹호활동 26.0%,교육정책개발 9.9%로 일선 교사들은 대부분 근무환경 개선과 처우개선을 중요한 과제로 들고있다.
교사들의 사기저하는 교육당국의 정책부재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변화로 교사들의 지위가 예전과는 현격하게 달라진데서 기인한다. 교육부 박용전 장학편수실장은 『50년대까지만해도 교사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대접받았으나 60년대 이후 경제적 지위를 중시하는 풍조가 만연해 교사의 사회적 지위가 많이 떨어진게 사실』이라며 『80년대 이후 다행히 교직을 천직으로 아는 젊은 인재들이 다시 교직에 모여들어 교직선호도는 높아졌으나 이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아직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교총은 제41회 교육주간(10∼16일)을 맞아 『교육을 바로 세워야 나라가 선다』라는 주제를 정하고 교육바르게세우기운동의 성격을 인간교육실천운동,교원의 자존운동,교육공동체 형성운동,비민주적 교육풍토의 개선운동,교육우선의 국책실현운동 등 다섯가지로 규정했다.
교육전문가들은 이같은 운동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단순한 구호보다는 교사들의 사기앙양과 교원지위 향상 등 근무여건 개선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또 최근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는 교육계 비리나 일부 타락한 사도 등에 비추어 이제는 우리 사회 전체가 교사들의 진정한 어려움과 고충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이해해야 될 때라고 말한다.
□특별취재반
▲사회부:설희관차장·김현수·장인철·여동은·남경욱·이진동·현상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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