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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감추기 수법(검은 돈의 비밀통로/가명계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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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감추기 수법(검은 돈의 비밀통로/가명계좌:2)

입력
1993.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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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입·출금… “자금 위장이동”/대개 3∼4개 계좌 거쳐 “돈세탁”/소액은 현찰… 거액일땐 「수표쪼개기」로 인출/3∼4개월만에 「통장해지」,추적피하기 연막가명계좌는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무거운 세금이 물려지고 가명계좌 이용 자체가 범죄시되는 사회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가명을 쓰는 이유는 갖고 있는 돈이 출처를 밝혀서는 안되는 「검은 돈」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자금 뇌물상납 커미션 등등….

이런 얼굴없는 가명계좌에 서치라이트를 비추어 누가 얼마를 주고 받았는지 가명의 실체를 밝혀내는게 자금추적 조사이다. 자금추적 조사는 비리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아무리 잡아떼다가도 돈이 오고간 증거를 들이밀면 십중팔구는 자인하고 만다는게 수사기관 사람들의 말이다. 미궁에 빠져들던 수사도 자금추적 결과만 나오면 일사천리로 급진전되기도 한다.

답보상태를 보이던 슬롯머신사건에 대한 수사도 자금추적 조사결과 일부 경찰 간부 등 관계자들이 가명계좌를 통해 정기적으로 업소 수입금을 상납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동화은행 사건에선 일부 현역 의원과 당시 고위공직자들이 역시 가명계좌를 이용,뇌물성 사례비를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정의 회오리속에서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비리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숨바꼭질이 자금추적이다.

얼굴 감추기에 필사의 노력을 하는 가명거래자와 이를 찾아 서치라이트로 속속들이 비춰대는 사정당국 자금추적반간의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숨바꼭질에서 끝내는 자금의 정체가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 과정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비리사건에 관련된 가명거래자들은 대개 거의 완벽한 돈세탁과정을 통해 검은 돈의 「때」를 말끔히 빼내기도 하고 자금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여러가지 장치도 개발해놓고 있다.

대표적인 따돌리기 방법은 잦은 입·출금…. 아무 의미도 없이 괜히 여러 계좌간에 빈번하게 자금이동을 시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정보사땅 사기사건때 은행감독원의 국민은행에 대한 검사결과 정덕현대리는 한번에 60억원 또는 1백20억원을 실질적인 자금의 입출없이 서류상으로만 돈이 드나는 것처럼 꾸민 것으로 밝혀졌었다. 수사기관이 「왜 이런 행위를 했을까」하고 의문을 품게 해 수사의 혼선을 초래케하는 일종의 테크닉이라는게 은행사람들의 얘기다.

자금추적 요원들은 「가명은 가명을 낳는 것」도 골칫거리라고 밝혔다. 가명계좌를 추적해가면 또다른 가명계좌가 나오기 십상이고 통상 3∼4차례 가명을 거쳐간다는 것이다.

또 가명계좌는 생명이 짧다. 대개가 계좌를 개설한뒤 3∼4개월만에 해지된다. 한달만에 한두번 통장을 쓰고는 떨어버리는(해지) 경우도 더러 발견된다. 꼬리를 길게 남겼다가는 추적반의 사정거리에 들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추적반은 「기름에 불붙듯 확 피어났다가 일시에 꺼져 버린다」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떨어버린 계좌도 성역은 아니다. 추적반은 비록 가명통장이 해지됐더라도 은행 자체 전산 마이크로필름에 보관돼 있는 계좌번호를 불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명거래자는 혼잡한 시간과 장소를 좋아한다. 가명계좌에서 출금되는 시간은 대개 일이 몰리는 월말,마감시간 직전에 집중돼있다. 그래서 「말일 4시30분에 움직인 가명계좌를 우선 뒤져라」는게 추적반의 원칙이다. 또 자금거래가 많고 고객들의 출입이 많아 드러날 염려가 없는 본점 영업부,명동 여의도 강남 일대의 대형점포들에 가명계좌가 몰려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추적요원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돈세탁과정을 거쳐 현찰로 나가는 경우다. 현찰로 움직이면 계속적인 자금추적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돈세탁은 가명계좌에 입금된 거액수표(예를들어 뇌물같은 것)를 그대로 현찰로 바꾸어 가는 경우와 수표쪼개기 및 재결합,수표 바꿔치기,단자어음 이용 등 크게 4가지 종류가 있다. 돈세탁의 고전적인 수법인 수표현금화는 자금추적을 피해 여러개의 가명계좌를 거쳐 최종적으로 현금으로 찾아가는 방법. 그러나 은행 지점들의 하루 현찰동원능력이 2억∼4억원에 불과해 거액의 경우는 수표쪼개기가 흔히 이용된다.

수표쪼개기는 예를 들어 1백억원짜리 수표를 인출한 다음 이를 다른 계좌에 넣어 재인출할 때는 10억원짜리로 분할한뒤 이 과정을 수차례 거듭,결국 수십장의 소액수표로 쪼개는 방식이다. 쪼개는 과정에 전혀 관련없는 수표를 뒤섞어 넣기도 한다. 다른 사람에게서 수표를 받아 사용하는 대신 그 사람 계좌에 자기 수표를 입금하는 수표 바꿔치기나 단자에 가서 단자가 보유하고 있는 기업어음 등으로 교환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단자어음 이용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는게 은행원들의 설명이다.

돈세탁은 결국 자금추적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현찰화가 최종 목적인데 세탁을 마무리한 현찰을 다시 입금시켜 수표로 바꾸어 전달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자금추적 조사는 이같이 돈세탁을 거쳐 이동하는 자금을 역순으로 추적하는 것으로 수표추적과 계좌조사로 진행된다. 수표추적조사는 돈세탁을 하든 직접 전달되든간에 결국 발행은행에 되돌아가게 돼있는 수표의 유통경로를 조사,사용자들의 신분을 밝혀내는 것이다. 계좌조사는 돈을 주고 받은 조사 대상자의 계좌에 대해 잔액을 확인한뒤 입출금 내역과 출처 및 사용처를 캐내는 조사이다.

가명계좌에서 현찰로 빠져나갔을 때는 탐문조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해당은행에 찾아가 창구 직원들로부터 현금인출자의 인상착의를 묻는게 고작이다. 그러나 은행원들은 최대 고객인 이들 가명계좌 주인에 대해 대개는 함구하고 만다.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해야만 겨우 입을 여는 정도다.

가명계좌는 대부분 대리인이나 심부름꾼을 내세우지 결코 현장에 나타나질 않는다. 어렵사리 잡아봤자 대리인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했다는게 추적요원들의 말이다. 이들 대리인은 대개 사채업자이지만 전주의 신분에 따라 대기업 관계자나 정치인 및 고위공직자의 심복들이 직접 출현하는 경우도 있다고 은행 창구직원들은 밝혔다.<이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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