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각서 체결때완 상황달라/「민족자존」 여론의식 신중론도90년에 한미 양국 정부가 합의했던 용산 미군기지 이전문제가 재검토되고 있다.
양국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공식언급을 자제하면서 물밑교감을 계속하고 있는 상태이나 공식대화나 협상은 아직 구체화하지 않았다.
정부간 협상인데 워낙 규모가 큰 사안인 만큼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측의 공식언급은 지난 11일 김종필 민자당 대표가 『용산 미군기지 이전에 약 2조4천억원이 소요돼 당초의 이전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것과 한승주 외무장관이 국회에서 『용산기지 이전계획이 국방부에서 재검토되고 있다』고 밝힌 것이 전부다.
국방부는 검토여부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은 말하지 않고 『기본합의각서(MOA) 체결당시와는 상황이 크게 달라져 재검토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측은 우리 언론보도에 여러차례 확인을 요청해오면서도 이 문제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다. 어차피 이전비용을 한국정부가 일체 부담키로 돼있는 마당에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이 이로울리가 없다는 태도인 것으로 보인다. 용산기지 이전이 최근 미국 자체내에서도 추진중인 해외미군기지 재배치계획과 맞물려 있는 점을 고려한 협상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양국의 이같은 신중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현 상황에서 미군기지 이전을 양국 모두 원치 않고 있어 조만간 협상이 구체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게 국방·안보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용산기지 이전문제 재검토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올해초부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지이전에 관한 기본합의 각서상 이전시기 목표를 96∼97년으로 설정하고 이전종합계획(마스터플랜)을 올해말까지 완성키로 하면서 실무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종합계획 마련을 위한 설계회사 지정문제에서부터 의견이 맞서 한발짝도 진전이 없게 되자 재검토의 필요성이 설득력있게 제기됐다.
합의각서 체결 당시부터 이전비용 일체를 우리측이 부담키로 한데 대해 불만을 제기했던 일부 관계자들의 주장이 신정부 출범이후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91년에 우리측이 예상했던 이전비용은 총 1조8천억원이었고 미국은 17억달러를 제시했으나 92년엔 다시 95억달러로 수정제의해왔다.
과연 수조원의 예산을 들여 미군기지를 옮길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정부내에서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최근 북한의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등으로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세가 심각해졌고 합의각서 체결때 주한미군 철수계획이 단계적으로 진행돼 이전규모가 상당히 축소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올해부터의 2단계 철수계획이 보류되는 등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도 재검토 요인이 됐다.
기지이전 재검토를 드러내놓지 못하는데 향후 미국과의 협상문제외에 다분히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 어려움도 있다.
당초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것이 민족자존이었고 주한 미군기지의 서울도심 잔류를 둘러싼 반미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렀었다.
6공 정권은 용산기지 이전문제를 민족적 자존심과 결부시켜 기지 이전후 세계적 민족공원을 조성한다는 등이 명분을 내세우며 국민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었다.
따라서 국민들의 기대가 잔뜩 부풀어 있는 상황에서 이전을 유보하는 것은 자칫 민족자존의 퇴색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저변에 깔려 있다.
정부는 이같은 명분과 실리를 저울질하면서도 재검토계획을 차분히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99년까지 유보하는 것과 2000년 이후로의 유보안 등을 놓고 실무자들끼리 논란을 빚다 일단 2000년 이후가 적당하다는 내부안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오산과 평택 일대에 고시한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문제도 재검토와 함께 거론되고 있다.
양국간의 용산기지 이전 재검토는 충분한 사전협상을 거쳐 조만간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 모두 이해가 일치되는 만큼 우리의 경우 신중한 협상태도가 요구되며 미국측도 일방적인 부담요구 등 무리한 조건을 내세우지 않는 것이 모두에게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이충재기자>이충재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