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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주의와 국졸주의/이인호(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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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주의와 국졸주의/이인호(한국논단)

입력
1993.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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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경제가 국제적 경쟁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문화계에서의 우리의 국제 진출도 눈부실만하다. 우리의 살림이 찢어지게 가난할 때부터 피나는 개인적 노력을 통해 세계 정상에 도전해 성공을 거둔 정경화 삼자매나 이데올로기의 사선을 넘어가며 자기의 예술세계를 지켜온 고 이응노화백의 경우 등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이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대나 화랑가에서 우리 예술인들의 이름을 만나는 일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이러한 국제교류 추세속에서 유감스러운 것은 공공기금으로 지원되는 사업들은 대부분이 우리 경제적 힘을 과시하거나 우리의 문화를 외국에 자랑하는 일회성 과시적 성격을 가진 것들이지 우리가 얻어올만한 것이 무엇인가를 긴 안목으로 공부하며 배워오게 하는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볼쇼이 발레가 나오게 된 문화적 배경이 어떤 것이며,국민의 배를 곯고 있는 상황에서도 위대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많이 세우고 유지해 올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가를 연구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는 기관이 없다.

외국의 고급문화를 접하는 우리의 자세가 이처럼 그 뿌리에 대한 이해의 노력이 없이 결실만을 따오는 식이기 때문에 한편에서는 외국문화,아니 예술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고급문화 전반에 대한 강한 반작용이 일기도 한다.

예술이나 문학 분야에서는 그래도 관객이나 독자가 직감적으로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고 공감할 수 있는 폭이 다소 있기 때문에 문화적 국수주의와 사대주의 사이의 대립이 약간 둔화될 수 있다. 하지만 가치의 평가에서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사고의 훈련이 요청되는 학술의 영역에 이르면,문화정책상의 국수주의와 사대주의 경향은 거의 분열증적 증후를 드러낸다. 광복후 지금까지 우리는 국가를 재건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선진국,일본 등으로부터 많은 지식과 기술을 도입해왔고 사실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광복과 동시에 미국의 배에 실려서 우리 한반도에 수입된 것이었다.

박정희정권의 수립은 이러한 서양숭배 추세에 대한 민족주의적 반작용이라는 의미도 가진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민족주의는 일본 군국주의 전통을 표본으로 하는 국수주의와 접목이 되었다. 기술과 경제는 서양에 의존하면서 서양을 진정으로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구호아래 조직적으로 봉쇄되었다. 외국여행을 제한한 것은 물론 대학이나 중고등학교의 세계문화사 과목이 날조된 국사과목으로 대치되었다.

본래부터 문제였던 문화적 국수주의와 사대주의 사이의 방침은 그후부터 분열증적 증후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국제화시대」에 돌입했음을 자랑하기 시작한지가 오래지만 문화와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외부세계를 본질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한국의 주부관광단이나 청소년 배낭족이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것이 이 시점에서 아직도 세계사 전임교수가 한사람도 없는 대학교들이 수두룩한 것이 우리의 수치스런 실정이다. 반공을 부르짖으면서 공산주의의 원산지 러시아에 관해서는 초보적인 지식도 가질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은 물론,지금까지도 미국이나 유럽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자료를 웬만큼 갖춘 도서관이 거의 없으며 중고등학교에서도 세계사는 필수에서 제외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연구하는 외국인들은 위대한 권위로 여기고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외국을 연구하는 우리나라 학자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것이 문화적 국수주의와 사대주의가 분열증적 증세를 드러내는 모습이다.

외국문화와 역사에 대한 기본적 무식과 외국문화에 대한 말초적 수용자세 때문에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엄청나다. 외국의 문화에 대한 깊은 지식과 이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양성될 수도 없었지만 오랜 시일에 걸쳐 어렵게 양성된 전문가들은 도외시 되는 반면에 전문영역도 분명치 않는 국내외의 국제세미나족이 국제회의다 시찰이다 해서 엄청난 돈을 쓰고 다닌다.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는 그 나라 사정에 밝지 않은 한국인들이 돈을 너무 흔하게 쓰고 다녔기 때문에 순수한 학자적 교류까지 위협받는 지경이며 개인전을 열거나 연주회를 할 수 없게 되어있는 이름난 장소를 엄청난 돈을 주고 빌림으로써 국내의 선전효과를 노리는 사람들도 있다.

문화적 사대주의와 국수주의를 다같이 극복하는 방법은 외부세계에 대한 무의식 타파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꾸준한 노력을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는 일이다.<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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