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가 공약한대로 경제운용을 민간주도로 이끌어가려면 은행의 자율화가 제일 긴요할지 모른다. 은행의 자율화는 금융자산의 운용과 인사의 자율화를 의미하는데 정부가 명실상부하게 은행지배권을 넘겨주는 경우 은행이 대주주인 재벌그룹의 사금고로 전락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정부는 지금 이 문제를 놓고 딜레마에 빠져있다.정부는 일단 특정 재벌그룹이 은행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하면서 은행이 순수 민간기업처럼 책임경영이 이루어지도록 제도 및 운영상의 보완을 강화키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민간인 대주주가 은행의 지배권을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순도높은 은행자율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자율화에 대해 정부와 재계는 서로 융화될 수 없는 견해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은행자율화가 궁극적으로는 표리가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실공히 일반기업처럼 대주주의 책임아래 경영 및 인사의 자율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 단계로서는 상업자본(재벌그룹)과 금융자본의 분리를 추진하려는 정부의 방침이 보다 합리적인 것 같다. 정부는 국민경제의 효율적인 발전을 위해 재벌그룹들의 문어발식 경영에 제동을 걸고 이를 재벌그룹별로 업종전문화로 유도키로 하고 있다.
정부의 상호 출자제한과 상호보증한도 규모축소조치는 바로 이것을 겨냥한 주요 정책수단이다. 정부는 또한 하반기부터는 내부자거래와 하도급 비리조사를 실시,이를 뿌리뽑겠다고 한다. 정부의 문어발식 확장 억제정책이 가시화되고 있는데도 재벌그룹들은 아직 정부정책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오히려 일부 상위재벌그룹들은 업종을 늘려가고 있다. 재벌그룹들은 계열기업들이 상호출자 및 보증,내부자거래 등으로 「샴의 쌍둥이」처럼 얽혀있는 것이 기업의 안전과 경쟁력을 제고시켜준다고 주장한다.
그 안전과 경쟁력 향상이 반드시 국민경제의 차원에서도 진리인 것은 아니다. 재벌그룹들은 생리상 그룹의 이익이 우선하는 것이다. 이들이 은행을 장악하는 경우 은행이 그룹의 사금고가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우리는 60년대초 금융민영화 시기에 그 폐해를 체험했다. 금융(은행)은 국민경제의 핏줄이다. 최소한의 공공성과 형평성은 지켜져야 한다. 재벌그룹들은 벌써 제2금융권을 완전 지배했다.
금융산업 발전심의회의 금융제도 개편연구(제2부 보고서)에 따르면 30대 계열기업군의 제2금융권에 대한 형태별 주식소유는 증권회사 63%,손해보험 45%,생명보험 38%,종합금융 23%,투자금융 30%로 돼있다. 은행까지 재벌그룹의 지배아래 들어가면 그들은 국민경제를 완전 장악하게 된다. 미·일·EC 등 선진국에서도 상업자본과 금융자본은 분리돼있다. 능률제고를 위해서 부배분의 형평을 위해서도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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