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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안보리/냉전체제 붕괴후/세계질서 “재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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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안보리/냉전체제 붕괴후/세계질서 “재단사”

입력
1993.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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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사태·북핵 최대 현안/5개 상임국 합의돼야 제재결정요즘 유엔본부 2층의 안보리 회의장 입구는 매일 하오 3시30분만 넘으면 사람들로 붐빈다. 안보리 비공개협의가 보통 이때에 시작되기 때문에 회의에 참석하는 15개 안보리이사국 대표단,회의정보를 얻으려는 유엔회원국 외교관들,그리고 안보리를 취재하는 세계 각국 특파원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최근 안보리의 단골의제는 단연 보스니아 사태이다. 소말리아 캄보디아 문제 등은 약간 휴식을 취하는 상태이고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북한의 핵문제가 안보리의 비공개 협의에서 수시로 논의되는 중요현안이 되어 있다.

북한의 핵문제가 어떻게 결말이 날지 현재로서 전망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만약 안보리의 제재결의로 이어지게 되면 북한의 운명과 직결되는 상황이 될지 모른다. 미소 냉전체제 붕괴후 세계질서는 안보리에서 재단되고 있다. 이라크·보스니아·소말리아·캄보디아의 운명이 안보리 결의에 의해 결정됐거나 또는 결정되어가고 있다.

냉전이전과 이후 유엔의 모습은 판이하다. 그중에서도 안보리의 변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안보리는 헌장상 평화유지를 위한 강제력을 발동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으나 미소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그같은 기능이 정지되다시피 했었다. 즉 미국과 소련이 자기 진영에 불리한 이슈가 상정되면 거부권을 행사해버렸기 때문에 유엔을 통한 문제해결은 거의 불가능하여 유엔무용론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냉전이후 러시아가 서방국가에 협조하면서 안보리는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5개 상임이사국들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막후 교섭을 통해 문제해결의 합의점을 도출해 나가는 것이 최근 안보리 의사결정의 특징이다.

따라서 안보리 회의방식도 냉전 전과는 딴판이다. 예를들어 83년 KAL 007기 격추사건을 놓고 미소는 안보리 공개회의장에서 삿대질을 해가며 상대방을 비난하는 싸움을 벌였는데,이는 냉전시대 안보리의 대표적 회의 광경이었다. 그러나 지금 안보리는 이런 스타일의 회의를 하지 않는다. 거의 주요결정이 비공개 협의회에서 이루어진다. 북한 핵과 관련해 지난 4월8일 채택된 안보리 성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공개 회의의 산물이다. 그리고 현재 추진중인 북한 핵관련 결의안 채택문제도 거의 상임이사국간의 비공개협의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유엔 외교관중에는 「안보리 회의가 비공개와 비민주적 의사결정의 전형」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매우 일리있는 지적이다. 안보리는 헌장에 의해 거부권이 있는 5개 상임이사국과 거부권이 없는 10개 비상임 이사국으로 구성되지만,의사결정 과정은 철저하게 상임이사국간의 비밀협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유엔 외교관들 사이에는 미 영 불 중 러시아 등 5개 상임이사국을 가리켜 보통 P5라고 부른다. P는 Permanent의 약자다. 그러나 이슈에 따라 P4,P3,P2로 세분된다. 지금 세계의 모든 이슈를 주도해나가는 나라는 미국이다. 그래서 미국을 중심으로 가장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영국과의 두나라 협의가 이루어질 때 P2라고 말한다.

대체로 서방세계의 이해가 걸려있는 이슈가 처음 제기될 때 P2의 은밀한 조율이 선행된다는 것이 유엔 외교관들의 통설이다. 여기에 프랑스가 붙으면 P3가 되고 러시아가 더 가담하면 P4가 된다. 북한 핵과 관련한 안보리 결의한 논의는 중국이 빠진 P4 회의에서 윤곽이 정해졌고,이를 토대로 중국을 포함한 P5 협의단계에 지금 와 있다.

최근의 안보리 풍토를 보면,중국은 P4와 다른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중국은 유엔헌장 7장을 들어 무력공격이 발생하지 않을 경우 군사 및 경제제재를 가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어떤 이슈에든지 들고 나온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조치에 반대하는 이유도 이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그런 원칙을 세우지만 결의안 표결에서는 거부권 행사 대신 기권하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안보리가 냉전 때처럼 절름발이가 되는 것은 피하고 있다.

안보리 의사결정의 어려운 고비는 P5간 합의과정이지 일단 상임이사국간의 합의가 도출되면 결의안이든 성명이든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사안의 긴급성에 따라 15개 이사국이 모두 참석하는 비공식 협의회를 언제고 소집해서 결의안을 열람시키고 이어 공식회의에서 표결을 해치운다. 북한 핵문제의 경우 일단 중국의 결심이 서있으나 결의안 초안 수정작업으로 P5협의가 길어지고 있을 뿐이다.

유엔 정치에 관심을 가진 유엔 회원국들은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 되는 것이 큰 소원이다. 그래서 선거전도 치열하다. 그러나 안보리 의사결정 과정을 보면 비상임이사국의 존재는 거의 무시된다. 안보리를 지켜보는 외교관들은 『비상임이사국의 주가하락은 냉전이후 P5 협조체제에 의해 더욱 심화됐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은 여러차례 비상임이사국에 선출됐었고 현재도 비상임이사국이지만 안보리에서는 경제대국이 아닌 2류국가 신세이다.

안보리 비중이 높아지면서 P5의 대사들이 유엔 정치에서 차지하는 역할도 높아지고 있다. 물론 안보리는 외교현장이고 정책의 결정은 워싱턴 북경 런던 파리 모스크바에서 이루어진다. 안보리협의를 하다가도 수시로 정회를 요구하고 본국 정부와 협의하는 모습은,마치 한국에서 정치협상을 벌이다 정회하고 당수뇌부의 지침을 기다리는 모습과 흡사하다.<유엔본부=김수종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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