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재벌과의 방정식도 바뀌어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 같다. 「정치와 재벌」이라기 보다는 「대통령과 재벌」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돈과 특혜가 교환되는 유착의 방정식이 이제는 작동하지 않는다. 김영삼대통령은 취임초 선언했다.『앞으로는 재벌로부터 돈을 안받겠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 그는 이 공언을 지켜가고 있다. 이것이 교육,금융,군,국회,세무서,공무원,경찰 등 사회 구석구석에 쌓여온 곰팡이 앉은 부패,비리를 털어내고 있는 사정의 추진력이다. 「윗물맑기운동」의 실체다.
『성역이 없다』는 것이 사정의 가공성을 더해준다. 재계는 사회전역을 강타하고 있는 사정의 태풍이 자신들은 비켜가주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손꼽을 수 있는 재벌치고 그와 연줄이 닿지않는 재벌이 있겠는가.
김 대통령은 이 연줄을 과감히 잘라버린 것 같다. 자리에 걸맞게 소아를 버리고 대아를 선택한 것 같다. 재계가 사적으로는 각자의 경로를 믿었었다면 공적으로는 경제의 성역성에 내심 자신을 가졌을지 모른다. 『누가 경제를 건드리겠는가』이것이 재계의 잠재적인 자기 과대일수 있다. 어느면에서는 옳다. 한국의 현재와 미래는 경제에 달려있다. 국가적 명운은 지금 구조적인 쇠퇴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는 국제경쟁력의 회복여부에 달려있다. 한국경제의 동력역할을 해온 재벌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경제의 압축성 과정에서 재벌의 부침이 없지 않았으나 파급영향을 극소화하기 위한 대가는 엄청났다. 부실화돼도 역시 파장을 우려하여 정부지원이 계속됐다. 나라와 은행이 재벌의 담보가 됐다. 정부의 모든 정책에서 경제를 위축시키는 것은 금기가 됐다. 재벌의 비리,부정이 사회적 물의가 돼도 「경제영향」 「기업활동영향」을 이유로 축소수사에 조기 종결로 끝나곤 했다. 「경제위축」 「기업활동 위축」이 재계와 재벌에게는 마술의 지팡이요 면죄부였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재계,재벌의 힘과 영향력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오만도 컸다. 착각도 컸다. 그동안의 압축성장은 국부의 증대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마는 천민자본주의,부의 편재,부정부패의 체질화를 남겼다.
김 대통령의 사정과 개혁정치에 대해서도 경제회복을 내세워 이를 희석시키려는 기득권층의 기도가 부단히 지속되고 있다. 사정과 경제회복은 동전의 앞뒤라는 김 대통령의 정당한 논리앞에 기득권층의 목소리는 잠시 침묵하고 있다. 기회가 있으면 다시 머리를 들 것이 분명하다. 김 대통령의 「신경제」는 대재벌구조를 명확히 그려주고 있다. 업종전문화,부조리방지,소유분산의 확대,재무구조의 개선 등등,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강력한 지도력으로 뒷받침될 때 무게가 달라진다. 재벌그룹들의 문어발식 경영(선단식경영)이 국민경제의 효율극대화를 저해한다는데 각계가 생각을 같이하고 있다. 또한 소유도 필요이상 집중돼있다. 30대 재벌의 내부지분율이 평균 46.1%(92년 4월1일 기준)다. 주요재벌로는 현대 65.7%,삼성 58.3%,대우 48.8%,럭키금성 39.7%,쌍용 37.7% 등으로 돼있다. 미국식의 주식매수에 의한 기업합병이 법으로 금지돼 있는 한국에서는 과잉자기보호가 아니겠는가. 정부는 현행 상호출자 및 보증한도 제한이상의 강한 수단은 동원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기존의 내부자거래 및 하도급비리 규제를 강화한다. 정부는 또한 재벌그룹의 은행지배를 거부한다. 재벌그룹들은 정부와 국민들의 신뢰를 살만큼 성숙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정·경유착의 틀에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미국기업들이 보여주는 「창조적 파괴력」이 없다. 자율을 요구하나 거기에 걸맞는 책임을 갖추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낡은 껍질을 탈피하는데는 정부의 개혁정책의 일관성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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