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대학」 강독/김성우(문화칼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대학」 강독/김성우(문화칼럼)

입력
1993.05.03 00:00
0 0

책을 읽자. 「책의 해」다. 무슨 책부터 읽을 것인가. 고전부터 읽자. 동서양을 통틀면 고전도 많다. 먼저 우리들 정신의 바탕이 되는 동양의 고전부터 펼치자. 우리 서민들을 길러낸 것은 사서오경이다. 지혜의 보고였다. 후인들은 선인의 밟은 길을 일단 습답해야 한다. 온고없이 지신은 없다.요즘 우리 사회는 개혁의 바람에 환부가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다. 악취가 코를 찌른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공부를 제대로 안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교육열도 높고 학력수준도 상승했지만 배울 것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진작부터 교육개혁이 외쳐져왔다. 「인간으로 가르치자」는 소리가 드높다. 공부를 새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 하더라도 고인들의 서당정신으로 되돌아가야할 때다. 거기 인간교육이 있다.

책을 들 시간이 없다고 핑계대는 사람은 「대학」을 읽자. 「대학」은 사서중에서도 가장 짧다. 누구나 한두시간이면 일독이 가능하다. 「대학」 앞에서는 시간도 무릎꿇고 앉는다.

「대학」은 「초학입덕의 문」이라고 한다. 덕을 배우는 입문서다. 극히 짧은 글속에 유가의 주장이 가장 체계적으로 담겨져 있다. 대학은 고대 중국의 최고학부의 이름이다. 「대학」은 이 최고학부의 교육이념을 요약한 것이라 할만하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우리가 흔히 쓰는 이 한마디가 바로 「대학」의 요목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부정은 개개인의 수신이 일그러진데서 비롯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몸을 닦자면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하고(정심) 마음을 바르게 하자면 뜻을 정성스럽게 하라(성의)고 했다. 뜻이 불성실해 마음이 굽어지니 수신이 안된다. 수신을 해야 제가가 된다. 자기 몸이 안닦여지니 집안이 다스려지지 않는다. 작금에 터져나오는 각종 비리들을 보면 대개 가족이 연루되어 있다. 집안이 어지럽다. 제가가 안된 것이다. 그러니 치국이 될리 없다. 자신이 나라를 다스릴 자격도 없고 나라가 다스려지지도 않는다. 「나라를 다스림에 반드시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해야 한다는 것은 그 집안을 가지런히 못하면서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라고 「대학」은 설명한다. 이런 구조속에서 평천하,온 세상이 평안할리가 없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부패는 재물욕에서 나온 것이다. 「대학」은 「재산을 낳는데는 대도가 있다」(생재유대도)고 가르친다. 재산은 아무 도리도 없이 아무렇게나 모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정도가 없이 치부에만 급급하다 이런 무도의 난장판이 되었다. 큰 길에 잡초가 자라지 않듯이 대도에는 정재 아닌 것이 생기지 않는다.

「대학」은 또 「덕이라는 것은 근본이요 재물이라는 것은 말단이다. 근본을 밖으로 하고 말단을 안으로 하면 백성들은 다투어 약탈을 하게 된다」고 했다. 본말이 전도된 이 세태에서 부정한 재물을 주고 받는 것은 정말 약탈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말이 거슬리어 나간 것은 또한 거슬리어 들어오고 재물이 거슬리어 들어온 것은 역시 거슬리어 나간다」고도 했다. 부정하게 번 돈은 부정하게 쓰이게 마련이다. 부도덕은 부도덕으로 보상된다. 무한궤도와도 같은 불의의 악순환이 온나라를 병들게 만들었다.

「어진 사람은 재물로써 몸을 일으키고 어질지 못한 사람은 몸으로써 재물을 일으킨다」는 말은 어진 사람은 재산이 있으면 그것을 베풀어 민심을 얻고 어질지 못한 사람은 자기 몸을 망쳐가며 재산을 모은다는 뜻이다. 불인의 축재로 일신을 망친 사람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무수히 목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소인배의 나라인가. 「대학」에는 「소인은 그 즐김을 즐기고 그 이익을 이익되게 한다」(소인약기약이이기리)는 구절도 보인다. 향락과 이기가 다수의 국민정신이었다. 「나라는 이로써 이로움을 삼지 아니하고 의로써 이로움을 삼는다」고 했듯이 이의 자리에 의를 바꾸어놓지 않으면 안된다.

시경에 「예쁜 꾀꼴새가 언덕 모퉁이에 머물렀네」라는 시가 나온다. 공자가 이 시를 두고 『새도 머물음에 있어 그 머무를 바를 아는데 어찌 사람이 새만 못할까보냐』라고 했다는 말이 「대학」에 인용되어 있다. 지어선,곧 선에 머물줄 알아야 한다.

「대학」은 「한 사람이 자기 이익만을 탐하면 한 나라가 어지러움을 일으킨다」고 했고 「한 사람이 나라를 안정시킨다」고도 했다. 이때 「한사람」은 군왕으로도 풀이되지만 백성 한사람일 수도 있다. 일인정국,실로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나라를 만든다. 이 넉자만으로도 우리가 당장 「대학」을 읽어야할 까닭이 충분하다.

대학사년불여대학일권,대학 공부 4년이 「대학」 책한권만 못하다고 말한다면 우스갯소리로 들릴 것인가. 우리 학교교육이 얇은 「대학」 한권보다 진정 못하지 않았더라면 나라가 이렇게 썩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대학」을 읽자. 그래서 「대학」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