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후 “부당한 비판” 받자 반발노동절인 1일 하오 6시20분 피에르 베레고부아 전 총리(67)는 프랑스 중부의 한 작은도시 느베르 교외의 르와르강변을 거닐고 있었다. 동행한 사람은 경호원 1명. 갑자기 한발의 총성이 강변의 정적을 깼다.
총리직을 물러난지 한달,그는 경호원이 차안에 풀어놓았던 매그넘 357 권총을 몰래 빼내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혼수상태에 빠진 베레고부아는 헬기로 파리의 군병원에 긴급 후송됐다. 미테랑 대통령과 발라뒤르 총리가 병원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의 자살기도에 대한 놀라움과 그의 정치적 업적,인간됨을 평가하는 정치인들의 반응이 회생의 간절한 기대와 함께 TV 생방송속에 계속 이어졌다.
밤 11시17분 베레고부아는 비가 내리는 파리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것은 싸늘한 시신이었다. 병원 당국은 베레고부아 전 총리가 하오 10시15분 헬기후송중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베레고부아는 이날 낮 자신이 시장과 국회의원인 느베르에서 노동절 행사에 참가했다. 노동조합 간부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연례적인 자전거 경기대회의 개회식을 주관했다. 몇시간후의 일을 상상한 사람을 아무도 없었다.
집권 사회당이 총선에서 패한 지난 3월29일,정확히 1년간 총리재임끝에 물러난 베레고부아의 권총자살은 프랑스의 공휴일 저녁을 경악과 충격,슬픔과 연민으로 일순간에 몰아넣었다.
베레고부아가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최후를 택했는지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그의 자살이 너무나 돌연한데다 유서도 없고 충동적으로까지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로 그의 자살에는 총리 재임기간의 업적과 명예가 크게 비판,훼손받고 있는데 대한 인간적 괴로움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부당한 정치적 평가에 대한 반발심리도 포함될 수 있다.
지난 총선캠페인의 가장 큰 이슈는 실업자문제였다. 우파는 10.6%에 달하는 고실업률로 대표되는 베레고부아 경제정책의 실패를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실업문제는 사회당이 불과 12%의 지지를 얻어 군소당으로 전락한 첫번째 패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경제정책의 큰 성과인 프랑화의 강제유지,경쟁력있는 물가안정 달성은 실업과 경기침체에 밀려 평가받지 못했다.
그의 자살후 자크 랑 전 문화장관은 사회당 정치인들은 『베레고부아는 부당하게 공격받았다. 우파는 아무도 그의 공을 말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헐뜯기만 했다』고 말했다.
총리직 말기에 터진 1백만프랑(1억5천만원)의 무이자 차용사건은 그의 명예에 결정적 흠집을 냈다. 내부거래 혐의로 수감중 사망한 사업가 친구로부터 지난 86년 이자없이 돈을 빌려 아파트를 구입한 것이 정치인의 도덕성 문제로 비화된 것이다.
이와함께 사회당의 대참패에 대한 총리로서의 책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갑작스럽게 자살을 결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살 2일전 모르와 전 사회당 제1서기에 보낸 편지에서 총리직을 불행스럽게 끝낸 회한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학교 졸업에 선반공,철도노동자 등을 거친 프랑스 정치의 입지전적 인물인 베레고부아는 소탈하고 겸손한 성품,강한 추진력과 신념으로 대중적 인기는 높았다. 그러나 결국 인기없는 미테랑 장기집권이 남긴 부정적 유산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베레고부아의 자살은 사회당과 미테랑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위축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신있던 한 거물정치인의 죽음은 정치의 비정과 무상을 프랑스 사회에 충격적으로 상징하고 있다.<파리=한기봉특파원>파리=한기봉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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