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학자 이종학씨 공개/시위상황·무자비진압등 상술/피해 통계등 수록… “사료가치”1960년 4·19혁명일을 전후한 사흘간의 긴박했던 서울시내 도심시위 상황과 경찰의 무자비한 대응조치 등을 상세히 기록한 관찬극비문서가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60년 4월20일 당시 서울 시경이 펴내 극비문서로 분류한 「사월십구일 사건개황」이란 2백2쪽의 이 책자는 원로 서지학자 이종학씨(65)가 2일 첫 공개한 것으로 4·19를 기록한 공문서로 중요한 사적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이씨는 지난달 20일자 조간신문에서 「김영삼대통령이 현직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4·19묘지를 참배하고 4·19의 재평가를 선언했다」는 기사를 읽고 20년전부터 서가에 있던 빛바랜 책한권이 문뜩 머리에 떠올랐다는 것.
이씨는 70년대초 교육자 서인달선생(90년 작고)으로부터 등사본인 이 책을 입수했으나 그동안의 정치상황에서 4·19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어렵다고 판단,공개를 미뤄왔다.
『종로서(19일) 8시45분 종로서원을 동원,내외근 정복 60여명을 경무계장이 중대장으로 6개 소대로 편성해 종로1가 화신앞에,수사사찰을 중대장으로 정보대를 편성해 관내 전역에,교통순경 25명은 교통계장을 중대장으로 편성해 광화문에…』
『남대문서(19일) 10시20분 약 5백명이 을지로1가 시청광장을 경유,선두가의 시청광장을 경유,선두가 의사당에 도달했을때 데모대 행렬중에서 중앙청으로 바로 가자는 구호를 외치며 계속 행진하므로 이를 제지하려하자 경찰관에게 무수히 투석,경찰관 3명이 신체파열상을 입었음』
『경무대앞 상황… 경찰은 비무장으로서는 도저히 행동할 수 없는 처지였으므로 타부서로부터 M1소총 15정을 대여받아 무장한 다음… (19일) 13시20분께 부득이 실탄발사…』
「사월십구…」는 데모대를 「폭도」 「난동분자」 「불순분자」로 표현하며 당시 의거상황을 시차별로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책 뒷부분에는 연행자조치,경찰·소방관 순직 부상상황 등 각종 통계자료도 수록돼 공식자료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통계자료중 실탄소모 상황표에는 카빈 3천6백60발,M1 2천8백발,미식기관단총 60발 등 모두 8천2백95발의 실탄을 쏜 것으로 기록,잔혹했던 경찰의 진압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또 민간인 사망 및 부상자 상황통계에는 병원별 사망자수 및 사망시기,부상정도 등이 실려있고 주택의 유리창 1장이 깨진것까지 기록돼 있다.
4·19무렵 연세대부근에 살면서 4·19시위를 목격했던 이씨는 『4·19의 재평가 기사를 보고 이 책과 4·19관련 스크랩 등 수많은 귀중자료를 자신에게 선뜻 넘겨주어 보관케한 서 선생의 큰 뜻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이 자료들이 4·19 진상규명과 가신이들의 얼을 기리는데 한몫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이원락기자>이원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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