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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민족분규의 희생양/피살된 프레마다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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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민족분규의 희생양/피살된 프레마다사 대통령

입력
1993.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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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쟁 타밀반군 소행추정1일 암살된 라나싱헤 프레마다사 스리랑카 대통령(69)은 정치권 내외의 적들에 둘러싸여 외줄타기 정치를 해온 비운의 정치인이었다.

프레마다사 대통령은 싱할리 민족주의자들과 타밀게릴라는 물론 집권당인 통일국민당(UNP)내의 반대파들로부터 끊임없는 암살위협에 시달려 왔다.

암살의 원인과 배경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당국은 일단 「타밀엘람해방호랑이들」(LTTE)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프레마다사 대통령의 최근 스리랑카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싱할리족의 반란을 군대를 동원해 무참히 진압,싱할리족의 원성을 받아왔기 때문에 싱할리극단주의자의 소행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암살주체가 누구든 간에 당국은 최소한 이번 사건이 일주일 전 발생한 야당지도자이자 프레마다사 대통령의 최대정적이었던 랄리스 아투라스무달리의 암살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있다.

아투라스무달리는 오는 17일 실시되는 지방의회 선거운동을 하다 콜롬보에서 무장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다.

결국 프레마다사 암살의 원인은 19세기 영국식민지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민족국가인 스리랑카는 1천6백만 인구의 75%인 불교도 싱할리족과 18%인 힌두교도 타밀족이 주류이다.

영국은 다수인 싱할리족을 통제하기 위해 타밀우대 정책을 실시했고 48년 스리랑카가 독립하며 정권을 잡은 싱할리족은 식민시절 우대받던 타밀족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83년 싱할리족의 억압에 견디다못한 타밀족은 인도의 지원을 받아 LTTE를 결성,무장투쟁에 들어갔다.

그러나 인도의 라지브 간디 총리는 85년 스리랑카와 평화협정을 맺어 스리랑카 내정간섭의 발판을 마련하고 이용가치가 없어진 LTTE의 무장해제를 위해 6천명의 인도군을 파견,사태는 인도와 타밀족의 싸움으로 비화됐다.

LTTE는 지난 91년 5월 타밀족 거주지역을 방문중이던 간디를 암살하고 싱할리족이 집권한 스리랑카 정부에 대해서도 무장투쟁을 계속해 왔다.

지난 89년 대통령에 당선된 프레마다사는 인도군의 스리랑카 북부지역 주둔을 허용하고 대대적인 타밀반군 소탕을 시작,LTTE의 암살표적이 돼 왔다.

89년 보안장관을 역임한 아투라스무달리를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된 프레마다사는 정치안정을 명분삼아 야당을 탄압하고 끊임없는 반란을 진압하느라 노력했지만 단 한번도 정치안정에 성공해 본 적은 없다.

오히려 야당은 권력남용과 헌법위반 등 혐의로 프레마다사를 탄핵하려 했고 싱할리족은 타밀진압에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전국 각지에서 반란을 꾀했다.

대통령선거 당시 가난과 내전에 찌든 스리랑카 국민들에게 1백만호 주택건설과 내전종식을 위한 민족대화합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프레마다사는 결국 가난과 내전의 희생자가 됐다.<원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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