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명텔레비전(HDTV) 브라운관 개발을 놓고 국내 업체들이 보인 치졸한 「선두차지」 경쟁은 전쟁을 방불케 하는 기술패권주의시대에 아직도 집안싸움만 되풀이하는 국내업계의 한심한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이번 소동은 삼성전관이 『HDTV 개발과 관련한 연구결과는 생산기술 연구원이 총괄 발표한다』는 약속을 깨고 브라운관 개발사실을 단독 발표하려한다는 소문을 입수한 금성사가 『우리가 먼저 개발했다』는 보도자료를 황급히 만들어 각 언론사에 돌리면서 빚어졌다. 이 때문에 HDTV 브라운관을 세계 2번째로 개발한 이들의 업적은 빛이 바래졌다.
많은 사람들은 지난해 64메가 D램 반도체 개발당시 보여주었던 대기업들의 행태가 1년도 못돼 또다시 재현된 것에 대해 실망스런 눈빛마저 보내고 있다.
차세대 영상으로 불리는 HDTV사업은 선진국과의 기술경쟁을 위해 90년부터 업체간 협력형태로 추진돼온 국책 공동연구사업이다. 그러나 핵심부품인 브라운관 시제품 개발단계에서 각 업체들이 연구성과를 독자적으로 발표함에 따라 수백억원 규모의 이 국책사업은 결실을 맺기도전에 삐걱거리며 협력화해 사태로까지 치닫게 된 것이다.
우수한 기술과 성과를 남보다 먼저 알리는 것은 정당한 기업활동이다. 그러나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되는 첨단과학사업이 개별기업의 홍보논리로 희생될 수는 없다. HDTV처럼 우리가 기술적 주도권을 쥔 미개척 사업이 기업간 이기주의에 의해 차질을 빚는 것은 더욱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 의식의 대개혁을 부르짖는 신한국건설의 시점에서 저질러진 구태라서 더욱 실망스럽다.
일본 소니사는 휴대용 첨단 컴팩트 디스크 플레이어인 「CD MAN」을 개발해놓고도 상품화되기전까지 발표하지 않은 적이 있다. 요즘과 같은 치열한 정보전쟁시대에 신기술을 공개한다는 것은 곧 축적된 노하우를 경쟁자에게 거저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업적경쟁에 눈이 먼 우리 기업이 두고두고 생각해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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