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제감독체계·관리요원 선정 등 무원칙/1백36명이 매년 30회 고사 전담도 무리/「수능」 앞두고 대책 시급교육부가 29일 발표한 국립교육평가원에 대한 정밀 감사결과를 보면 학력고사 정답유출사건은 평가원의 구조적 결함에 의해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예고된 비리였음을 알 수 있다.
완벽한 관리·감독을 해야할 출제본부의 운영부터 엉망이었다. 출제본부내에서도 핵심적인 업무(문제지 및 답안지 편집 등)를 담당하는 종합작업실에 대한 감독원이 평가부위원장(출제교수)과 관리대표(평가원 소속) 등에게 이중으로 부여돼 있으나 관리대표는 그동안 종합작업실 출입을 금지당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지휘감독체계가 문란한 틈을 타 91∼93학년도 기획관리위원으로 종합작업실을 상시 출입했던 김광옥 전 장학사(50)가 상급자의 지휘·감독을 받지않고 전횡에 가까운 종합작업실 운영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장학사는 엄격한 통제를 받도록 돼있는 출제본부의 복사기와 전화도 거의 자유롭게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화통화의 경우 출제위원장의 서면허가를 받아 보안요원이 대리통화하도록 돼있으나 감사결과 92∼93학년도에만 규정에 어긋난 1천2백20회의 통화사실이 드러나는 등 「통신보안 제로」 상태속에서 출제가 이루어진 것으로 지적됐다.
대통령선거 다음으로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다는 학력고사 출제본부 관리요원도 아무런 기준없이 선정했다.
김 전 장학사의 경우 91∼93학년도에 7차례나 출제본부에 가장 핵심적인 보안업무를 담당하는 기획관리위원을 맡았다. 또 당해 연도 대학에 응시할 수험생을 둔 평가원 직원은 절대 출제본부 요원이 될 수 없다는 규정을 어기고 90∼93학년도 출제본부 구성시 모두 8명의 수험생 학부모가 출제본부 요원으로 선정됐다.
김종억 전 장학관(58)이 김 전 장학사와 공모,자신의 아들을 성균관대에 부정입학시킬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은 무원칙한 출제본부 관리요원 선정 때문에 가능했다.
출제관리 요원들이 몸수색을 받지 않고 무단외출을 수시로 한 사실도 드러나 출제보안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교육부는 이같은 감사결과를 토대로 관련자 53명을 사정차원에서 무더기 징계하고 이미 지난 26일부터 활동에 들어간 「국립교육평가원 조직진단위원회」(위원장 정범모 한림대 총장)의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빠른 시일내에 평가원의 기능 및 조직에 대한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육계 일각에서는 평가원을 지도감독해온 교육부의 잘못은 하나도 적시하지 않은채 다른 공직에 있는 전임자를 포함,전체 직원의 절반에 가까운 인원을 무더기 징계한 것은 교육부의 지나친 책임전가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형평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이같은 과잉징계가 직원들의 사기저하의 원인이 될 경우 오는 8월 시행해야 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출제관리에 차질도 예상된다는 것.
한편 93학년도 전기대입시 출제위원장이었던 서울대 박승재교수(57·물리교육과)는 『시험문제만을 연구개발하는 전문인력과 출제를 위한 독립시설을 확보하지 않는한 문제지나 정답유출 가능성은 상존한다』며 입시때마다 급조하는 현행 출제본부 운영체제의 근본적인 개선을 촉구했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도 『1백36명에 불과한 평가원의 인력으로 매년 30회에 가까운 각종 국가시험을 관리하는 것은 무리』라며 『인력충원과 독립출제시설을 확보하는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인력충원은 「작은 정부」를 표방한 정부의 공무원 인원감축방침에 어긋나고 독립시설 확보도 단시일내 실현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목전에 다가온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관리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김현수기자>김현수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