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실시된 러시아 국민투표는 역사적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현행 러시아 헌법은 다 떨어진 누더기 누비이불과도 같다. 최근 몇년간만 해도 3백50개 조항이 개정 혹은 보완됐다. 시대변화에 맞지않은 구 소련의 유물이 새로운 내용으로 대체된 것이다.그러나 아직도 러시아 헌법에는 시대상황과 배치되거나 모순되는 부분이 적지않다. 그 가운데 특히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단순한 행정수반으로 규정해 놓고있는 점이 개혁추진에 차질을 주고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또 다시 권력을 볼셰비키주의자들의 손에 넘길 것인가. 아니면 무언가를 바꿔볼 것인가. 이를 알기위해서는 과감히 러시아 국민들의 뜻을 물어야 했다. 옐친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신임을 묻기위해 국민투표라는 카드를 뽑았다.
이제 투표는 종료되고 결과가 명백하게 드러났다. 압도적 다수가 옐친에게 신임표를 던졌다. 그의 경제개혁에 대한 지지도 예상보다 훨씬 긍정적이었다. 러시아 국민들은 과거로 회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러시아 유권자들은 일부 정치가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합리적이었다. 대다수 유권자들이 옐친과 그의 개혁정부에 「다(예)」표를,보수파 정적들에게는 「니예트(아니오)」 표를 던졌다.
러시아 국민들은 옐친의 개혁이 「실패했다」는 보수파 의원들의 주장을 잠재우고 개혁과도기의 어려움 때문에 본질적인 개혁을 중단할 수 없음을 판시했다. 또한 현행 헌법의 비합리성을 지적,개헌가능성을 한층 높여놓았다. 이로써 옐친과 개혁파들은 비록 법적인 효력을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들로부터 확고한 정치적 지지를 얻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옐친 신임표 대부분은 옐친 개인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그가 상징하는 개혁정책에 대한 지지로 봐야한다. 이와관련,옐친은 과감한 개혁추진을 위해 개헌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해왔다.
반면 이번 국민투표는 러시아 최고회의에 씻을 수 없는 참패를 안겨주었다. 옐친측 입장에서는 보수파가 장악한 의회의 패배로 나타난 국민투표 결과를 향후 정국장악의 호기로 삼지않는다면 역사에 빚을 지게되는 것이다.
따라서 옐친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가능한한 빨리 구시대의 유물이자 개혁의 걸림돌인 최고회의와 인민대표대회를 해산하려 들게 뻔하다.
그러나 옐친에게 해산을 명령할 법적 권한은 없다. 또한 루슬란 하스불라토프 최고회의 의장 등 보수파 의원들은 패배를 인정하려 들지않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국민투표를 통해 획득한 국민적 지지를 정통성의 근거로 삼아 입법부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것이다.
이번 국민투표 결과는 또한 옐친이 서방 등 다른나라서 생각하는 것처럼 무력하지 않음을 보여줬다. 옐친은 이제 공산주의 부활를 막을 유일한 보루로 부상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옐친이 패배를 인정치 않는 보수파 정적을 제압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옐친의 위상이 투표이후 한층 더 강화된 것은 사실이다. 개혁에 대한 국민적 지지로 군과 보안기관이 옐친의 편을 들도록 압력을 받고있어 그는 보수파와의 대결에서 더욱 유리해졌다.
그러나 승자인 옐친측이 자축하기엔 아직 이르다. 현 헌법상 대통령에게 의회해산권이 없다. 게다가 조기총선 실시여부를 묻는 문항에서 옐친은 유권자의 과반수를 얻지못했다.
따라서 러시아의 권력투쟁이 끝났다고 보아선 결코 안될 것이다. 투표결과의 해석을 놓고 러시아 입법부와 행정부가 벌이고 있는 갑론을박이 증명하듯 양측의 권력싸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옐친은 어떻게든지 개헌을 강행할 것이고 보수파의회는 이를 저지할 것이다.
러시아의 권력구조가 전면 재편될때 개헌은 물론 현행 최고회의의 폐지와 다른 형태의 입법제도의 도입이 가능하다. 만약 옐친이 이에 실패한다면 완벽한 권력장악을 위한 대안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러시아 이타르타스통신 사장>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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