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선거부정 문제삼아 제거기도동독 공산당 정권의 마지막 총리였던 한스 모드로(65)에 대한 선거부정재판이 『동독의 마지막 상징제거를 위한 정치재판』이란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스 모드로는 베를린장벽 붕괴전 동독 공산당내 개혁세력의 대표로 동독의 고르바초프로 불렸던 인물이다. 그는 드레스덴지역 공산당 제1서기로 체제개혁 움직임을 주도,89년 11일 베를린장벽 붕괴후 개혁정부 총리에 추대됐으나 이듬해봄 첫 민주선거에서 공산당 패배와 함께 퇴진했다. 통일후 그는 공산당 후신 민사당(PDS)에 참여,독일 의회의 진출해 동독 사회주의 추종세력의 대표격으로 남았다.
지난주 시작된 모드로에 대한 선거부정재판은 89년 5월 실시된 동독 지방선거 당시 드레스덴지역 당 제1서기로서 공산당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선거결과를 조작했다는 협의와 관련된 것. 독일 검찰은 공산당이 국민들의 체제불만을 은폐하기 위해 광범한 선거조작을 했던 당시 드레스덴에서는 90%선이었던 투표율이 97.8%로,10%선이었던 공산당 반대 및 기권율은 2.5%로 각각 조작됐음을 밝혀냈다. 이에 따라 당시 드레스덴시장 등에 이어 모드로와 드레스덴지역당 간부들을 선거부정 참여혐의로 기소했다. 이와 별도로 드레스덴시장과 크렌츠 전 서기장 등에 대한 재판과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선거부정사건과 관련해 다른 인물들에 대한 재판과 수사는 큰 관심을 끌지않고 있다. 그러나 모드로의 경우에는 그가 과거 체제변혁이 전 개혁지향세력의 상징이자 희망으로 존경을 받았고 지금도 적지않은 동독인들의 사회주의적 이상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독일 검찰과 법원은 역사의 격동에 비춰 무시해도 좋을듯한 동독 지방선거 부정을 재판하는 명분을 『동독 사회주의 독재하의 형식적인 의회민주주의 요소마저 침해한 범법행위를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선거당시 동독 선거부정관련법은 통일조약으로 실효됐고 독일연방 헌법은 동독시절의 사건에 적용될 수 없는 것이 법률논리이지만,사회정의 회복을 위해 처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동독인들뿐 아니라 다수언론들은 모드로 재판을 동독인들의 마지막 상징제거를 위한 정치적 음모로 보고 있다. 이 재판의 목적은 정의구현보다는 모드로의 연방의원 자격을 박탈,그를 현실정치에서 추방하자는데 있다는 것이다. 실제 검찰은 모드로의 공직담당 자격을 재판의 주된 심리사항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모드로는 크렌츠 드메지에르 등 동독의 과거 지도자들이 침묵이나 타협적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 달리 통일후 동독의 현실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외쳐왔다. 그는 통일후 동독지역의 정치 행정 언론 기업 등이 모두 서독인들에 의해 지배되고 자본주의적 가치가 사회주의적 정의를 누르는 현실을 개탄해왔다. 『엘바강 동쪽의 민주주의는 사기극이 됐다』는 것이 그의 규정이다. 이와함께 그는 의회에서 동독인들의 복지배려 및 이익보호와 재정지원 확대 등을 강력히 요구,통일후 좌절한 많은 동독인들의 심정적 지지를 받고 있었다.
모드로에 앞서 이미 적지않은 동독의 지도급 인물들과 과거 반체제 지식인 등이 갖가지 비리폭로 등에 몰려 사회적으로 매장됐다. 동독체제 붕괴와 통일작업에 앞장섰던 인물들마저 통일후 무참히 도덕성을 손상당한채 망각속으로 전락했다. 구 체제의 악덕에 가담했다는 이들에 대한 뒤늦은 협의 폭로는 대부분 분명하게 입증되지 않지만 반증 또한 쉽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 체제 전체가 악덕으로 규정된 상황에서 이들을 선뜻 옹호하고 나서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드로 재판에는 민사당의 지지세력들과 프랑스 인권변호사 등이 「서독의 음모」를 비난하며 변호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일단 「제거음모」의 대상이 된 이상 모드로에게도 활로는 없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동독은 통일로 민주주의에 봉합됐지만,민주정치에도 비정한 정치게임의 논리가 지배한다는 것을 구 동독 지도자들은 갈수록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베를린=강병태특파원>베를린=강병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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