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가격에 구형사기 일쑤/성능보다 로비력에 더 신경『일선 부대에서는 가장 우수한 무기와 장비를 요구하지만 심의과정에서 거래선 등이 바뀌는 바람에 군이 바라지도 않는 결과를 초래,막대한 예산만 낭비하게 된다』 『시행착오를 깨닫고 뒤늦게 무기도입선을 바꾸려해도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군의 사기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군수산업 정보에 밝은 한 예비역 대령은 암호명 율곡사업(군전력증강사업)의 시행착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업이 육군의 지대공 미사일 도입.
지난 81년부터 도입이 추진된 국방부의 군기지 방어용 단거리 지대공 요격미사일은 미국의 스팅거와 영국의 자브린,프랑스의 미스트랄 등 3종이 치열한 경합을 벌인끝에 86년 영국의 자브린 미사일 2백기가 도입했다.
그러나 자브린 미사일은 스팅거나 미스트랄에 비해 유도장치가 한세대나 뒤졌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스팅거는 일단 표적을 겨냥,점만 찍으면 자동추적이 되나 자브린은 움직이는 표적을 따라 계속 수동으로 조준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명중률이 떨어지게 된다. 한마디로 M1 소총과 M16 자동소총의 차이만큼 성능면에서 큰 격차가 있는 셈이었다.
당시 전두환대통령의 영국방문시 도입이 결정된 것으로 알려진 자브린 미사일은 결국 국방부가 각 사단에 배치한뒤 육군의 반발이 거세지자 뒤늦게 도입을 중단하고 대신 프랑스의 미스트랄 미사일 9백84기를 올해말까지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국방부는 도입선 결정시 스팅거의 생산회사인 미국의 제너럴 다이내믹스사가 기술이전을 꺼려 영국과 프랑스제품을 도입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스트랄 역시 보병용으로는 너무 무거운데다 발사대가 커 기동성이 떨어지는 단점을 노출,국방부는 다시 스팅커 미사일의 도입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사일 도입을 추진한지 10년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미국측과 기술이전 문제를 놓고 재협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시행착오는 기종 선정을 둘러싸고 최근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차세대 전투기사업(KFP)에서도 거론되고 있다.
군관계 전문가들은 F18에서 F16으로 기종선정이 뒤바뀐 것보다는 오히려 82년부터 추진된 KFP가 10년씩이나 끌며 「비싼 값에 구형비행기」를 구입하게 된 결정과정을 더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기술축적이란 명분으로 직도입가격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들여오게 된 경위 자체가 의혹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미국에서는 F16을 개발하는 10년이 걸렸는데 우리나라는 이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는데만 10년이 걸렸다는 사실이 율곡사업의 근본적인 문제점중 하나라는 것이다.
공군에서 요구하는 기종과 값이 싸면서도 기술이전이 용이한 기종을 놓고 의사결정을 하는데 너무 오랜 시일이 소요됐고 이 과정에서 선택기종이 구형이 돼 그만큼 가격이 오르게 됐다는 얘기다. 생산대수가 많을수록 가격은 떨어지고 구형기종으로 공장이 문닫아야 할 때쯤이면 고정비 부담이 증가,오히려 값이 오르는데 KFP는 바로 이런 점에서 수십억달러의 국고를 낭비했다는 지적이다.
율곡사업의 시행착오는 결정과정 자체가 워낙 복잡한데다 최종결정은 청와대에서 내려 사업결정체계상에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는 것.
우선 각군이 새로운 무기를 도입하려면 교육사령부에서 작전요구성능(ROC)을 작성,작전참모부를 거쳐 합참의 무기선정위원회 심의를 받게 되는데 여기서 채택되면 율곡사업에 포함된다.
무기도입선의 결정이나 기술이전문제 등은 국방차관이 위원장인 국방부 전력증강위원회에서 결정하며 최종 재가는 대통령이 내리는게 통례다.
이같은 심의결정 과정에서 당초의 ROC 요구 성능보다 뒤떨어지는 무기가 도입되는 사례가 허다한데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됐던 중형수송기 도입이 대표적인 예.
중형 수송기사업(CX)은 공군이 운용하는 대형 전략수송기와 대형 헬리콥터를 연결하는 전술공수용 수송기를 93년부터 95년까지 도입하는 사업이다.
국방부는 바로셀로나 올림픽이 한창이던 지난해 8월 스페인 카사사의 CN235M기 12대를 대당 1천4백만달러씩 1억6천4백만달러에 구입하고 부속품 및 지원장비 3천2백만달러어치를 들여오기로 계약했다.
CX는 당초 CN235M기와 이탈리아 알레니아사의 G222기가 치열한 경합을 벌였는데 CN235M기는 공군의 ROC에 거의 미달,G222기의 도입이 확실시됐었다. 실제로 ROC 요구성능은 ▲적재량 1만파운드 이상 ▲가용화물실용적 1천5백입방피트 이상 ▲실용상승고도 2만피트 이상 ▲공수병력 수송능력 42명이었으나 CN235M기는 최대 적재량 8천7백61파운드,가용화물실용적 9백95입방피트 등으로 요구조건에 미달하는데다 좌석수는 42명이나 무장공수병중량 42명이나 무장공수병중량 1인당 1백14㎏을 감안할 때 실제 공수병력이 34명으로 제한되는 약점을 갖고 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G222기는 ROC 요구조건을 충족시키고 미 공군에서도 CN235M기와의 경합끝에 90년 8월 표준 중형수송기로 선정됐으나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지고 말았다.
강창성의원(민주)은 당시 국정감사에서 『CX 사업결정후 주한 스페인 대사관과 이탈리아 대사관의 무관 등을 만났더니 우리나라의 무기도입 과정이 지나치게 무원칙하고 무책임하며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했다』며 『그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의 무기도입 결정과정에서는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방법보다는 비정상적인 접근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강 의원은 CN235M기가 중형수송기로 결정된 배경이 『도입과정에서 한국측 대형업체였던 K사의 박모씨(육사 19기)가 거액의 로비자금을 고위층과 군실력자에게 뿌린 결과』라고 주장했다. 관광용 수송기가 아닌 군작전용 수송기를 도입하면서 뚜렷한 원칙도 없이 기종을 결정한 단적인 예라는 지적.
이같은 도입결정 과정에서의 무원칙이 도입후 실전배치가 끝나면 그대로 시행착오와 연결되는 셈이다.
나병선의원(민주)은 『무기는 군이 최종 선택권을 갖고 선정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고위층에서 결정권을 쥐고 있는게 가장 큰 문제』라며 『대형프로젝트일수록 성능보다는 로비력과 협상에 의해 도입선이 결정된다』고 밝혔다.
결국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면서도 결정과정이 철저히 베일속에 가려진 율곡사업의 특성상 시행착오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이다.<박정태기자>박정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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