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총선 과반 찬성불구 가결 실패/옐친 개헌 강행땐 한판대결 불가피러시아의 국민투표는 예상대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반쪽승리」로 굳어지고 있다.
공식적인 투표율이나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러시아 언론 및 여론조사기관의 출구 여론조사에 따르면 총유권자 1억6백여만명 가운데 65% 정도가 투표에 참가,각 항목별로 옐친 대통령 지지성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조사에 의하면 국민투표의 4개 항목중 가장 중요한 대통령 신임의 경우 지지도가 투표자의 60∼65%,경제정책이 55% 안팎,조기 대선과 총선은 각각 30%와 70%선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일단 옐친 대통령 진영이 내세운 「다 다니예트 다」(항목순으로 예 예 아니오 예) 전략이 국민들에게 먹혀들어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옐친진영이 루슬란 하스불라토프 최고회의 의장을 정점으로 한 의회 보수파와의 권력투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는 국민적 지지기반을 확보한 것이다.
특히 의회에 대한 불신임을 뜻하는 의회의 조기 총선여부를 묻는 네번째 항목에서 무려 70% 가까운 찬성표를 이끌어냄으로써 옐친측도 도덕적으로 훨씬 의회에 앞서 있다는 점을 과시했다.
따라서 옐친측은 국민투표의 결과를 개혁욕구로 해석,국가권력의 구조개편과 정계 물갈이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옐친측은 이미 현 의회의 폐지와 양원제 실시,대통령의 권한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공개,국민투표이후의 국정운영 방침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문제는 국민투표 승패기준의 모호함이다. 이번 투표는 서로 연관이 있는 문제를 4개항으로 나누어 민의의 심판대에 올림으로써 러시아의 보혁세력이 서로 승리를 주장할 수 있는 소지를 남겨놓았다.
특히 4개 항목 가운데 대통령 신임과 경제정책부문은 투표자의 과반수,조기 대선 및 총선은 등록유권자의 과반수를 가결기준으로 규정,승패판단을 더욱 흐리게 만들었다.
예컨대 옐친측이 신임부분과 정책부분에서는 투표자의 과반수 찬성을 얻어 승리했다지만 정계개편을 추진할 수 있는 항목(조기총선)에서는 투표자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음에도 가결기준인 등록유권자의 과반수 획득에는 실패했다.
의회 해산과 조기총선을 통한 정계개편의 합법성을 인정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때문에 옐친 대통령이 개헌안을 밀어붙일 경우 지난 3월의 직할통치선언과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파국상태로 비화될 공산이 크다. 의회 보수파는 옐친 대통령을 위헌으로 몰아 탄핵 결의안을 또다시 발의할 것이 틀림없다.
의회는 현상유지를 바라고 있다. 이를 깨뜨리기 위해서 옐친측은 국민투표를 그가 당초 구상했던 형태로 치렀어야 했다. 개헌문제와 조기 총선 등을 자신의 신임과 연계시켜 가결기준 투표자의 과반수 찬성으로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는 겨우 투표일 며칠전에 신임부문과 경제정책부문에서 「투표자의 과반수 찬성 가결」이란 완화된 기준을 이끌어냈다. 헌법재판소의 그런 결정이 없었더라면 옐친의 패배는 기정사실이었다.
이번 결과를 보면 어떤 항목이든 투표율 65%를 기준으로 지지율을 총유권자비율로 따지면 40% 안팎이다.
의회 보수파가 이러한 점을 들어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 명백하다. 이번 국민투표의 종결은 보혁대결의 또다른 시작을 부르는듯 같다.<이진희기자>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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