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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 표정속 소신발언 2시간/군수뇌 「뇌물진급」 휴일 대책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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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 표정속 소신발언 2시간/군수뇌 「뇌물진급」 휴일 대책회의

입력
1993.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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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군으로 거듭나는 과정의 아픔” 공감유달리 화창하고 라일락 꽃냄새가 가득한 휴일인 25일 하오 국방부청사에는 별판을 단 그랜저승용차를 비롯한 국방부와 합참 고위간부들의 차량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긴급 소집된 대책회의에 참석하는 군수뇌부의 부산한 행차였다.

이날 아침 공관과 숙소에서 장관실로부터 갑작스런 소집통보를 받은 이들은 긴급 지휘관 회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아는 것 같았다.

옷깃을 여미며 청사로 들어서는 이들의 표정엔 최근 군이 겪고 있는 충격과 당혹감이 그대로 배어있었다.

오랜만에 동료들을 만나 나누는 악수도 그리 힘이 실리지 않은듯 했다.

하오 2시 정각 본청 2층 정책회의실. 10분전께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군수뇌부의 얼굴은 납덩이처럼 굳어 있었다.

각자 자리를 찾아가 앉은 참석자들은 옆자리 사람들과 가벼운 목례만을 나누었다.

김종호 전 해참총장 사건 등 할말이 많은텐데도 입을 여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서로를 쳐다보는 시선도 초점없이 겉도는듯 했다.

잠시후 권영해장관이 무거운 얼굴로 나타나자 참석자 전원은 부동자세로 기립했다.

권 장관은 장로로 있는 국방부내 국군중앙교회서 예배를 보고 오는 길이었다.

평소같으면 환한 미소에 한두마디 농담을 건넸을 권 장관은 곧바로 국기에 대한 경례 등 간단한 의식을 진행토록 했다.

테이블 중앙에 참석한 권 장관은 『휴일이지만 방안에 앉아있기가 국민에게 죄송스러웠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분과 마주앉아 현 사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하는게 낫겠다고 판단해 자리를 마련했다』면서 『우리 한번 흉금을 털어놓고 얘기합시다』는 말과 함께 참석자 전원에게는 현 사태에 대한 진단과 대책 등의 의견을 말하도록 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서 발언은 이필섭 합참의장,김동진 육군총장,김철우 해군총장,이양호 공군총장과 직할부대장,이수휴차관,국방부 고위간부 등 순으로 이어졌다.

모든 참석자들은 평소같으면 꺼내기 어려운 수위높은 발언을 소신있게 개진했다.

김철우 해군총장은 자신의 순서가 되자 고개를 숙인채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죄인이나 다름없는 제가 무슨 말을…』이라며 머뭇거리던 김 총장은 잠시후 나름대로 생각한 대책을 어렵게 말했다.

발언이 진행될수록 회의장의 분위기는 진지하고 엄숙해졌고 찬물을 끼얹는 것 같은 정적이 감돌았다.

이 자리가 군의 앞날을 가늠하는 역사적인 자리라는 책임감을 느끼는 듯했다.

1시간30분동안 30여명의 의견개진이 끝난뒤 권 장관은 의견을 즉석에서 종합,공보관을 통해 여과없이 발표토록 지시했다.

하오 4시 회의를 마치고 나가는 군수뇌부의 표정은 처음과 달리 훨씬 밝아보였다.

어떤 시련이 다가오더라도 그 고통은 군이 국민과 군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진통이라는 인식과 「환자」가 자신의 병을 모두 털어놓았다는 후련함 때문인 것 같았다.<이충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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