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 대면 검은 돈이 터져 나온다. 이런 한구석에 정직하게 땀흘려 모은 깨끗한 돈이 있다는 것만도 여간 유쾌한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런 돈이 장학기금으로 쓰이게 되었으니 살맛이 저절로 나게 된다. 어느 팔순의 할머니가 빈대떡 장사와 삯바느질로 억척스럽게 모은 30억원의 사재를 장학기금으로 기탁한 것이다.세태의 명암이 대조적이다. 대학입시엔 정답장사가,장군진급에 별장사가 끼어들고,돈장사를 하는 은행에선 거액의 커미션이 오고 간다. 온갖 검은 돈이 마치 홍수때의 탁류와 같이 흘러 다닌다. 부도덕한 축재는 그 자체로 썩어 버리지 선용되는 일은 없다. 치부의 노예가 되어 돈에 갇히고 말뿐이다. 떳떳치 못하니 끝까지 숨기게 되고 그러다가 결국 패가망신의 불행을 자초한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오늘 생생하게 지켜보고 있다.
정직한 돈은 다르다. 썩은데로 흐를 수가 없으며 또 흐르지도 않는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이치와도 일치한다. 땀흘린 대가이니 당당하게 내놓고 쓰며 값진 일에 쓰게 된다. 이게 바로 치부의 윤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팔순 할머니의 소박한 「독지」가 우리네 가슴에 와 닿고 어느 때보다 은은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이 할머니는 그동안에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게 해마다 30여명의 학생을 뒷바라지 했다고 한다. 6·25피란시절 어린 딸이 천막학교에 다닌 뼈저린 기억때문에 한때 학교를 세울 뜻까지 가졌으나 여의치가 않았다. 그래서 금싸라기 땅과 상가건물을 미련없이 「장학」에 바쳤다.
장학 할머니는 돈과 교육의 의미와 본질이 무엇인가를 한꺼번에 일깨워준다. 투기와 직위를 이용한 「졸부의 성」은 무력하고 가치가 없다. 깨끗하고 땀에 밴 치부만이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또한 교육은 돈을 쓰는 일이지,버는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한다. 검은 돈을 숨기는데가 학원이어서는 안된다. 교육은 결코 치부의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팔순의 독지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가치관의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축재의 과정과 결과가 중요함을 말없이 타일러주고 있는게 아닌가. 깨끗한 돈과 검은 돈은 이만큼 차이가 엄청나다. 땀흘려 정상으로 벌고 깨끗하게 쓰는 돈의 풍토를 굳게 다져가야 할 것이다. 어둠이 짙을수록 밝음이 빛난다는 평범한 진리를 거듭 반추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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