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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재단(고교교육을 살리자: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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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재단(고교교육을 살리자:11)

입력
1993.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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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육영… 학교운영 “궤도이탈”/재단전입금 미흡… 재정난 최악상태/일부선 교사 「뒷돈」 채용등 탈법까지/“예산타령만 말고 건학이념 되찾기 노력해야”고교교육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사학재단이 국가의 전면적인 통제정책하에서 재정의 영세성과 비윤리성으로 각종 비리를 낳고 있다.

처음부터 열악한 상태에서 출발한 사학재단의 재정은 평준화 정책이후 더욱 악화돼 왔고 이로인해 교사채용을 둘러싼 기부금수수,각종 잡부금 모금,교비 유용 등 사학비리가 심심치 않게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93년 현재 우리나라의 사립 중·고교재단은 모두 8백75개 법인에 이른다. 이중 중학교만 있는 법인이 1백54개,고교만 있는 법인이 2백20개,중·고교가 함께 있는 법인이 5백1개로 고교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법인은 모두 7백21개이다.

이들 법인이 운영하고 있는 사립고는 인문,실업계를 통틀어 8백78개교로 전체고교의 50.7%,학생은 1백31만6천명으로 전체학생의 62%를 차지한다.

이 만큼 한국의 고교교육은 사학이 떠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국가의 교육보편화 정책에 따라 사학의 자율성은 이미 무너진지 오래고 교육내용의 독자성과 학생선발권 등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수업료에만 의존하는 사학재정은 계속 악화되기만 했다.

교육부에 의하면 지난해 정부가 사립중·고교재단의 재정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시도교육청을 통해 지원한 재정결함 보조금은 총 7천8백억원에 달했다. 올해는 더욱 늘어나 9천1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고교의 경우 지난해 3천6백6억원이 지급됐고 올해는 4천7백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 지난해말 현재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사립 중·고교는 전체 1천5백81개교 가운데 1천4백91개교로 94%에 이른다.

정부는 이미 올해부터 4개 연도에 걸쳐 국·공립과 사립고교간의 공교육비 격차를 4분의 1씩 해소한다는 예산편성 지침을 확정해 두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사학재단의 재정문제는 좀체로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학재정이 어렵다는 것은 최근들어 사립고교를 세우려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데서 잘 드러난다. 서울시교육청에 의하면 91년 이후 서울시내에 사립고교인가를 신청한 경우가 한 건도 없었다. 또 분당,일산 등 신도시의 경우 정부는 사립 7개교를 포함,모두 13개 고교를 설립키로 했지만 현재 국·공립 4개교만 들어섰을뿐 사립고는 한곳도 없다.

사립고 1개교를 설립하려면 수익용 기본재산을 제외하고 학교부지,건물 등 교육용 기본재산을 갖추는데만도 1백50억∼2백억원이 소요되는데다 현재의 수업료로는 학교운영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학재단의 재정수입은 학생들의 수업료와 재단의 수익용 재산에서 나오는 수익금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러나 수업료는 평준화 정책,물가억제정책 등으로 국·공립 고교수준으로 동결돼 있어 사학재단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

○시설투자 거의 외면

또 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수익용 재산은 기본적으로 학교를 운영하기에 규모가 부족하고 재산의 종류도 대개 자금운용이 힘든 임야,전답 등으로 구성돼 있어 법인 전입금이 거의 전무한 학교가 대부분이다.

사학 관계자들은 사학재정의 문제가 정부의 정책부재 때문에 악화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사립 중·고교 법인협의회 관계자는 『80년대에 들어서서야 법인설립시 한 학급당 1백30만원의 수익용 기본재산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법인인가 조건이 됐다』며 『70년대 이전에는 수익용 재산보유가 형식적이어서 사학재단의 재정이 취약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재정지원에도 불구하고 사학의 재정은 어렵다. 재정결함 보조금이 국·공립교의 공교육비에 맞춘 기준재정 수요에서 각 학교의 수업료와 재단전입금을 공제해 산출되고 이는 인건비와 운영비 부족분만을 보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에 고교와 중학교를 1개교씩 운영하고 있는 D재단의 경우 지난해 시교육청으로부터 재정결함 보조금으로 중학교에 6억원,고교에 5억원 등 11억원을 지원받았다. 경상비로만 한달에 4억원,한 해에 50억원정도를 지출하는 이 재단은 수익용 재산으로 시가 40억원 정도의 건물을 갖고 있지만 여기에서 나오는 한해 수입은 1억2천만원 정도에 불과해 한달 경상비의 4분의 1에도 못미친다.

이 재단 관계자는 『서울시내 사립 고교재단의 80%가 수익용 재산은 있지만 실제수입은 거의 없다』며 『정부의 지원이 있어도 기본 경상비를 충당하기에 급급할 뿐 학교시설을 개선하는 등 신규투자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빈곤한 재정구조하에서 사립고교의 교육환경은 날이 갈수록 황폐해지고 사학은 건학정신에 따른 본래의 역할을 다할 수 없어 날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학교시설이 낡은 것은 물론이고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의 인건비를 충당하지 못해 시간강사를 마구 채용하고 그나마 법정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또 열악한 재정구조하에서 사학재단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재정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극히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하게 되고 이를 통해 온갖 유형의 사학비리가 양산돼 왔다.

사학재단들이 저지르고 있는 비리중 가장 대표적이고 뿌리 깊은 것이 각종 잡부금의 모금이다. 50년대 사친회비에서 시작돼 사학재정 불신의 씨앗이 된 잡부금은 날이 갈수록 수법이 다양해져왔다.

서울시내에 3개 고교를 운영하고 있는 한 재단은 얼마전까지 1년에 잡부금만으로 3억여원의 수입을 올렸다.

교사를 채용할 때 기부금을 걷거나 인건비를 착복하기 위해 유령교사를 두는 경우도 흔하다. 최근 경기 성남의 모 사립고교 교사채용에 응시한 K모씨(28)는 합격을 하고서도 『기부금으로 1천2백만원을 내야 채용이 된다』는 학교측의 요구를 무시,탈락된 일이 있다고 전했다. 서울의 D상고는 이름만 있고 수업은 하지않는 유령교사 13명을 채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복이나 교련복 체육복 업자와 결탁해 수수료를 챙기고 부교재를 학교측이 일방적으로 지정해 업자로부터 사례비를 받는다. 학급비품을 방학숙제로 가져오게 하며 학교매점을 학생복지가 아니라 수입원으로 운영하는 일 등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교육부에서 인가한 정원을 초과해 학생을 모집하는 일도 일어난다. 서울 구로구의 모 고교에서는 올해 신입생을 2백여명이나 불법으로 초과해 입학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한 학급당 인원이 59∼63명이나 돼 수업시간에 교사가 교실을 돌아다니며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라며 『벌써 여러해째 학급 인원수를 어떤 서류에도 실제 인원으로 기재하지 않는다』고 털어 놓았다.

이같은 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사학재단들은 학교의 주요 요직에 친인척을 배치해 족벌체제를 구성한다. 지금까지 사학비리로 문제가 된 대부분의 재단들이 족벌체제로 운영돼 왔다.

고교 사립재단의 재정의 영세성과 이로 인한 비리,열악해지기만 하는 교육환경 등은 대학재단의 문제와 함께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70년대들어 사학이 학생선발권과 수업료 책정권한을 상실함으로써 악화된 사학재정과 이로 인한 비리는 80년대 학원민주화운동을 낳는 씨앗이 되기도 했다.

○정부지원도 늘려야

대부분의 교육 전문가들은 이같은 사학재단의 문제들이 국가가 공교육의 예산절감을 위해 사학을 유치하고 국가가 원하는 교육과정을 그대로 관철시켰지만 사학에 충분한 재정지원을 하지 못하고 사학재단의 비정상적인 영리추구를 묵인해 온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때문에 사학 관계자들은 사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지원 확대,평준화 정책의 개선,수업료의 부분적인 자율화 등을 통해 사학이 「준공립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서울시사립중고교재단협의회 김동섭회장은 『사립 고교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립학교가 건학정신을 살릴 수 있는 운영체제를 갖추도록 정부가 지원해 주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재정보조보다는 평준화 정책을 점차 개선해 사립학교들이 시장경쟁 원리에 따라 경쟁할 수 있는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김현수·장인철·여동은·남경욱·이진동·현상엽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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