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자식사랑 학부모/브로커 전락 교육공무원/돈밖에 모르는 대학재단/출제관리 평가원 대개혁 시급/서류보관규정 허술… 재발 소지/부정 적발돼도 은폐 일쑤… 수사도 핵심 못건드리고 미온적건국이후 최대의 대입부정사건과 국립교육평가원의 학력고사 답안지 유출사건 등으로 온나라가 연초부터 홍역을 앓고 있다.
이같은 일련의 부정과 비리는 교육자이기를 포기한 대학 관계자,돈밖에 모르는 학부모,브로커로 전락한 공무원 등이 한통속이 되어 저지른 사상 유례없는 것이다. 이로인해 국가의 공신력과 대학의 권위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면서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입시부정은 일부 학부모들의 비뚤어진 자녀교육관과 사학재단의 허욕,황금에 오염된 검은 양심의 합작품이다.
대입학력고사 출제와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국립교육평가원 소속 장학관과 장학사가 공모한 답안지 유출사건을 보는 국민들은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겨두었다」는 허탈감속에 분노를 느끼고 있다.
○총체적 부패 단면
사회 일각에서는 「교육부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해마다 대학의 입시부정이나 제대로 감독하지 못하면서 감사마저 겉치레로 일관,사학재단과의 유착의혹까지 받으면서 부정과 비리를 키워왔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산하기관인 교육평가원에서 국가기밀과도 같은 정답이 여러해동안 유출된 사실은 바로 교육부의 직무유기 정도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평가원측은 이처럼 공신력이 땅에 떨어져 만신창이가 돼버린 상태에서 오는 8월과 11월 두차례 9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출제하고 관리해야 한다. 평가원이 완벽하게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어느 누구도 이 기관의 시험관리능력을 믿지 못할 것이다.
경찰은 22일 그동안 캐면 캘수록 점입가경이던 경원학원 입시부정사건에 대해 수사결과를 발표했으나 미진하고 석연치 않은 구석은 그대로 남아있다.
교육부는 앞으로 입시부정에 재단이 관련됐을 경우 이사장의 취임승인을 취소하고 대학 당국이 부정을 저지르면 증과증원 불허,재정지원 중단,부정인원 5배수 이상의 신입생 모집중지 등 각종 행·재정적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그러나 성적이나 적성을 무시한 맹목적 대학진학욕구가 완화되지 않고 이 사회의 배금주의 등 병리현상과 도덕적 불감증이 치유되지 않는한 입시부정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수가 조기종결 의혹
▷평가원 사건◁
지난 17일 교육부의 뒤늦은 수사의뢰로 시작된 서울지검의 대입시 정답유출사건 수사는 출제관리담당자였던 국립교육평가원 김종억장학관(58)과 김광옥장학사(50)가 공모해 정답을 유출한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검찰은 ▲이들 2명외에 평가원이나 교육부 내부에 다른 공모자가 있거나 ▲제3자에게 정답이 유출됐을 가능성을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배제한채 사실상 핵심수사를 끝낸 상태다.
하지만 이같은 검찰의 잠정결론과는 달리 학력고사 정답유출이 장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이루어져왔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여러가지 정황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지난 91년부터 3년간에 걸쳐 모두 6차례 학력고사 정답이 유출됐다고 보고 있다.
이중 91학년도 전기,93학년도 전·후기 등 3차례는 한서대 재단이사장 함기선씨(52)의 부인 한승혜씨(51·구속중)의 부탁을 받고 김 장학사가 단독으로 한 범행이고 92학년도의 전·후기·추가 후기시험 등 나머지 3차례의 정답유출은 김 장학관과 공모한 범행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여러가지 의혹이 제기됐던 정답유출방법은 김 장학사가 출제본부에서 정답을 작은 종이에 옮겨 적어 문제지를 인쇄본부인 성남의 대한교과서(주)로 넘기러갈 때 호텔로비에 떨어뜨리면 부인 김영숙씨(46·구속)가 주워 전달하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김 장학사가 정답유출의 대가로 한씨로부터 받은 돈은 서울 도봉구 수유동의 영빈장여관을 구입하는데 사용한 3억원이 전부』라고 밝혀 또다른 정답유출에 의한 거액수뢰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그러나 김 장학사가 92학년도 후기대 학력고사 문제지 도난사건으로 출제관리가 엄격해진 추가 후기시험 때도 정답을 유출할 만큼 대담했던 점으로 미루어 제3,제4의 수험생에게도 정답을 건네고 거액을 챙겼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또 김장학사가 김 장학관과의 인간적인 정리 때문에 돈 한푼 받지 않고 상당한 위험이 따르는 정답유출을 결행했다는 점도 설득력이 약하다.
특히 두사람이 91학년도 후기입시때부터 함께 출제본부에서 일했던 점으로 미루어 상당기간 공범관계를 유지해왔거나 최소한 김 장학관이 김 장학사의 「정답유출장사」 사실을 묵인하는 대가로 자신의 아들을 위해 문제를 유출토록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비록 이들외에 다른 공범자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이번 사건이 허술한 입시관리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교육부 또는 평가원 전체가 정답유출의 공범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명백히 드러난 것은 출제관리위원 선정·답안지 복사·인쇄·보안 등 출제관리의 전과정에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허점을 찾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호텔 전화의 경우도 철저한 관리수칙은 있었지만 실제로는 허술하기 짝이 없어 『김 장학사가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고 부인과 범행을 모의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는게 검찰의 설명이다.
게다가 지난달 29일 김 장학사로부터 범행을 자백받은 교육부가 즉시 수사기관에 통보하지 않고 20일동안 쉬쉬한 점은 환부를 도려내기보다는 감추기에 급급한 고질적인 행정병폐의 한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공직자 방패로 이용
▷경원학원사건◁
경원학원 입시부정에 대한 경찰 수사결과 부정합격생은 경원전문대 91년 입시에서 90명,92년 7명,93년 1명 등 3년간 98명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입시 관계자료가 폐기된 90년이전과 경원대에서의 부정은 단 한건도 밝혀내지 못했지만 대학재단과 교수·학교 관계자,학부모와 학생이 엮어내는 돈과 권력을 매개로한 사기극의 실체는 밝혀진 셈이다.
우선 경원전문대 입시부정이 기존 여타 대학의 입시부정과 두드러지게 달라보이는 특징은 대학재단이 돈을 목적으로 입시부정을 저지르는 한편으로 그 비리를 방패막이하기 위해 「공짜로」 공직자 등 소위 힘있는 자들을 끌어들였다는 사실.
91년 입시부정학생 90명중 12명의 학부모가 공직자였다는 사실은 대학재단의 이같은 방패막이로 이들이 거꾸로 이용당하기도 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경원학원은 우선 「대학건물 신·개축 자금을 마련키 위해」 김용진 전 이사장(45·여·미국체류)의 직접 지시로 교학처장의 주도하에 부정입학생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모으는 과정에는 이사장 자신이 직접 나서는 것은 물론 교직원과 몇몇 교수들이 사례비를 챙기면서 마치 암표 팔듯이 「장사」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모집이 끝나면 부정합격생들을 양산하는 것은 간단하다. 교학처장과 전산실장 등이 호텔에서 합격예상선 이상의 답안이 기입된 OMR카드를 직접 만들어 수험생들의 OMR카드와 바꿔치기하고 이를 컴퓨터에 입력하면 그만이다.
경찰의 OMR카드 감독자 직인 감식작업으로 이 조작과정은 밝혀졌다.
하지만 학교측이 입시관계 자료보관 기한에 대한 교육부 지침을 악용,90년 이전자료는 모조리 폐기해 버리는 통에 이 시기의 부정의혹은 영원히 「물증」을 찾지 못하게 됐다.
○“우리만 아니다” 항변
▷광운대 사건◁
이 대학 입시부정은 브로커조직·교수 교직원 재단 친인척 등이 한통속이 되어 조하희 전 교무처장(53)을 통해 1억원은 학교측에 전달하고 5백만∼3천만원씩은 알선료로 챙기는 조건으로 거대한 입시 암시장에서 이루어졌다.
성적조작은 조무성 전 총장(54)의 지시를 받은 조하희 전 처장이 점수를 컴퓨터에 입력시키는 작업을 맡고 있는 전자계산소 직원들에게 성적변조를 지시,컴퓨터 조작으로 합격자 명단을 거짓 작성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학교측이 90∼93학년도 OMR카드를 없애버려 증거확보가 안돼 한때 궁지에 몰렸던 경찰은 원형 마그네틱 테이프의 변조내용을 밝혀냄으로써 빙산의 일각이나마 부정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대리시험에 의한 입시부정은 한양대·덕성여대 등 10여개 대학에서도 적발됐다.
입시브로커조직 신훈식(33·광문고 교사·구속) 일당은 「입시복덕방」을 차려놓고 제자 및 명문대생들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입시원서의 사진을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대리시험을 치르게 한뒤 거액을 챙겨왔다.
실제로 광운대 입시부정과 대리시험 사건에 관련돼 노승행 전 광주지검장이 아들(20)의 「대리시험 아르바이트」로 옷을 벗었으며 광운대 경영학과에 부정입학한 장모군(20)의 아버지 장성득 육군 소장도 군을 떠나야 했다.
서울경찰청은 당시 교사 교직원 학부모 브로커 등 관련자 58명을 구속하고 77명을 수배,10명을 불구속했지만 입시부정의 전모를 밝혀냈다기보다 개별사건의 범죄내용을 확인하는 정도에 그쳤다.
뒤이어 드러난 경원학원의 대학합격증 장삿속이 이러한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는 것이다.
당시 경찰에 구속된 광운대학교 관련자들이나 최근 경원학원 입시부정의 실무책으로 드러난 조종구 전 교학처장(56)은 『우리 대학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보다 더한 대학이 많은데 왜 우리 대학만 물고 늘어지느냐』고 반발,교육계의 입시부조리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부정입학자도 당시 92년 18명,93년 전기 11명,후기 68명 등으로 드러났지만 학교측이 입시자료인 OMR카드를 대부분 폐기해버린 점으로 미루어 광운대의 입시부정은 훨씬 이전부터 더 큰 규모로 이루어져 왔다는 심증을 굳혀주었다.
『입시를 둘러싼 교육계의 비리가 너무 규모가 방대해 어디까지 파헤쳐야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물증도 없이 수사를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수사당국의 항변은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김승일·하종오·조상욱기자>김승일·하종오·조상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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