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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문병/권 국방 생색 피해자측 반발(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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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문병/권 국방 생색 피해자측 반발(등대)

입력
1993.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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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하루종일 서울대병원 영안실 1호방에서는 짙은 향내음속에 전날 무장탈영병의 흉탄에 어이없이 목숨을 잃은 고성주씨(51)의 영혼을 달래는 독경소리가 흘러나왔다.부인 박귀임씨(48)와 1남4녀가 흐느껴 울던 이날 하오 6시30분께 국방부에서 장례비·보상문제를 협의하러온 대령 2명이 나타나자 유족들은 정성들여 음식을 마련했다. 권영해 국방부장관이 조문을 올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고 장관조문 계획은 보도진에 의해 사실로 확인됐다.

유족들은 고씨를 불귀의 객으로 만든 임채성일병(19)의 실질적 최고 지휘책임자인 장관에게 가슴에 응어리진 슬픔을 토로하면서 위로를 받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 시각,권 장관은 서울대병원 본관 3층 중환자실에 머리에 총상을 입고 입원중인 최정석씨(27)의 보호자들로부터 거친 항의를 받고 서둘러 병원을 떠나고 있었다.

경위는 이랬다. 중환자실옆 보호자대기실에 있던 최씨의 아버지 최태환씨에게 하오 6시께 병원장실로부터 『빨리 내려오라』는 연락이 왔다. 「장관행차」를 모르던 최씨는 아들신병에 무슨 일이 있나 그슴이 철렁해져 내려갔다. 그러나 장관비서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으로부터 들은 것은 『장관이 위문오시니 만나보라』는 말이었다.

하오 6시30분께 권 장관은 병원도착 즉시 2층 병원장실에 들른뒤 중환자실로 직행,의식불명인 최씨를 위문했다.

하지만 다음이 문제였다. 사람을 시켜 중환자실 바로 옆 대기실에 있던 최씨 아버지에게 중환자실로 오라는 연락이 온 것이다. 최씨를 비롯한 가족·친지들이 발끈한 것은 당연하다. 『의식불명인 환자에게 무슨 병문안이며 중환자가 있는 병실에서 무슨 얘기를 하자는 거냐. 진정 위문을 왔다면 보호자·가족·친지를 먼저 만나야 하는게 아니냐』

권 장관은 감정이 북받친 최씨가족의 웅성거림이 들려오자 가족위로는 생각지도 못하고 비상계단을 통해 서둘러 병원을 빠져나갔다.

고씨의 억울한 시신이 안치된 영안실에는 가지도 못했다.

고씨 가족에겐 장관보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간직한 최씨 삼촌(60)의 조문이 더 소중하고 고마웠다.<황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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